[기업Hi스토리] 휠라, 미스토홀딩스로 이름 바꾼 사연
[기업Hi스토리] 휠라, 미스토홀딩스로 이름 바꾼 사연
  • 김희연 기자
  • 승인 2025.03.31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년 역사의 글로벌 브랜드 휠라, 국내 기업이 된 이야기
미스토홀딩스로 사명 변경···다양한 브랜드 사업 전개하겠다
/사진=휠라홀딩스
/사진=휠라홀딩스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한 때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과 함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선두 주자였던 휠라(FILA)는 이제 엄연한 한국 회사가 됐다. 그 중심에는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를 이뤄낸 윤윤수 휠라 회장이 있었다. 본래 1911년 이탈리아 형제가 속옷 위주의 의류 브랜드로 시작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한 휠라가 국내 회사가 된 과정을 살펴본다. 

샐러리맨의 도전

/사진=휠라홀딩스
휠라홀딩스 윤윤수 회장./사진=휠라홀딩스

1945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연 매출 30억달러의 대기업의 회장이 되기까지 온갖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도전과 방황 끝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윤윤수 회장은 처음에는 해운회사에서, 이후 JC페니라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외국계 유통 회사에서 일했다. JC페니에서 삼성전자 전자레인지를 미국에 대량 수출하는 데 성공한 윤윤수는 무역업계에서 이름을 날렸고, 화승그룹으로부터 임원직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윤윤수 회장은 화승에서 신발 관련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며 활약했다. 그러던 중 영화 ET의 성공을 보고 영감을 받아 ET 봉제인형 제작을 제안했지만, 저작권 문제에 걸려 약 8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큰 책임감을 느낀 그는 3년간의 임원 생활을 마치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휠라코리아 회장이 되다
다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후배의 소개로 예식장에서 일해 보는 등 잡일을 이것저것 하다가 다시 신발 사업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화승그룹 재직 시절 출장 중에 미국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휠라 티셔츠를 세련되고 멋스럽게 보였던 것을 기억해 낸다.

윤윤수 회장은 휠라라는 브랜드가 의류뿐만 아니라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면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당시 미국 휠라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호머 알티스에게 제안을 했다. 그리고 휠라 미국 사업을 도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때부터 휠라는 주력 분야가 의류보다 신발이 더 큰 회사로 성장했다.

1991년, 휠라 본사가 한국에 진출하려 조사를 하던 중 윤윤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에게 휠라코리아 사장직을 제안한다. 윤윤수 회장이 휠라코리아 초대 회장이 된 것이다. 

휠라코리아는 윤윤수 체제 하에 1992년 매출 150억원을 냈고 이후 꾸준히 매출이 성장해 2000년에는 매출 1470억 원을 냈다. 10년도 되지 않아 매출을 1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당시 FILA 회장이었던 엔리코 프레시가 ‘휠라의 탄생은 이탈리아에서였지만 휠라의 성장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연봉 25억원이라는 샐러리맨 신화를 기록한 윤윤수 회장은 2005년 삼성증권으로부터 180억원을 대출받아 휠라코리아를 인수했다.

반면 1990년대 말 휠라 본사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과도한 확장으로 매출액이 급격히 하락하게 되고, 사모펀드의 과도한 투자로 2000년대 휠라의 전성기는 끝난 듯 보였고, 2003년에는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이미 매각된 상태였다. 

이에 윤윤수 회장은 휠라 본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고 휠라코리아의 매출액과 자신의 전 재산, 그리고 직원 200명을 일일이 설득해 가며 모금한 돈에 브랜드 로열티를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휠라 본사를 인수한다. 

/사진=휠라홀딩스
/사진=휠라홀딩스

휠라 회장 자리에 앉은 그는 경영을 안정화하고자 적자 원인을 없애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부채를 모두 해결하고 2007년 휠라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 그가 회사를 인수하자 당시 언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표현했다. 

2011년에는 미래에셋과 힘을 합쳐 6년간 52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들인 끝에 골프 브랜드 아쿠쉬네트 홀딩스를 인수한다. 이로써 골프 업계 1위 기업의 주인이 됐고, 이를 뉴욕 증시에 상장시켰다. 

제2의 전성기
2018년 3월에는 장남 윤근창 부사장이 휠라코리아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휠라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아들 윤근창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잠깐 삼성전자에 근무했다. 미국에서 MBA를 마친 후 2007년 휠라에 입사, 휠라 USA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쳤다.

휠라가 재기에 성공한 핵심 비결은 '뉴트로' 감성에 있다. 90년대의 상징적인 제품을 되살려 옛 감성에 목말라 있던 고객들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올드스쿨 패션 유행이 불면서 자연스럽게 휠라도 다시 뜨기 시작했다. 휠라는 1997년 출시했던 '디스럽터'를 재해석해 20년 만인 2017년 '디스럽터2'를 출시했고, 폭풍적인 인기를 끌며 신발 전문 매체 풋웨어뉴스의 ‘2018 올해의 신발’로 선정됐다.

휠라코리아는 2019년 12월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사명을 휠라홀딩스로 변경했다. 2020년 휠라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윤 근창 대표가 휠라홀딩스의 대표를 겸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윤윤수 회장은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윤 대표가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게 된다.

하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자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매장 폐쇄로 인해 오프라인 매출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국내 한정 매출이 감소 추세에 놓이게 됐는데, 20년대 들어 어글리슈즈 인기가 예전 같진 않은 것이 주된 요인이다. 또한 물적분할 우려, 중국 법인 분식회계 루머 등으로 2019년 6월부터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3월까지 고점 대비 시가총액이 75%가량 폭락했다. 

2022년 이후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증가 등으로 수익성 악화했다. FILA 브랜드가 한때 ‘국민 운동화’로 불리며 인기 있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보다는 가성비 브랜드로 인식됐기 때문에, 소비 둔화 시기에 다른 고급 브랜드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휠라의 새로운 도약
윤근창 대표는 브랜드 정체성 위기에 맞서 싸우고자 지난 2022년 글로벌 5개년 전략 계획 ‘위닝 투게더’를 발표했다. 위닝투게더는 오는 2026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고객 중심 비즈니스 구축을 통해 글로벌 리딩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다. 

미스토홀딩스로
휠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브랜드 고급화와 인적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니스, 농구 종목에서 각광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의 역사를 지닌 휠라는 국내에서 10~20대를 타깃으로 한 '가성비' 브랜드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강화가 필요했다.

이에 휠라홀딩스는 31일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미스토홀딩스(Misto Holdings Corporation)'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미스토(MISTO)'는 이탈리아어로 '혼합'을 뜻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력 브랜드인 휠라 이외에 글로벌 신규 브랜드를 육성해 사업 다각화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휠라는 골프 관련 자회사 아쿠쉬넷 외에도 중국 등지에서 마르디 메르크디, 마뗑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등을 유통하고 있으며 신규 브랜드 및 사업을 지속해서 론칭할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