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포스트잇 위에 그려지는 '내면 지도'...종로에서 시작된 새로운 교육 실험
투명 포스트잇 위에 그려지는 '내면 지도'...종로에서 시작된 새로운 교육 실험
  • 김희연 기자
  • 승인 2025.08.0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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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영감 찾기....2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만드는 인문학적 여정
내면지도와 동네지도에 감정색상 포스트잇을 붙인다./사진=
내면지도와 동네지도에 감정색상 포스트잇을 붙인다./사진=종로구 동네배움터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삼청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투명한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이 그리는 것은 일반적인 지도가 아니다. 거리와 건물 대신 개인의 기억과 감정, 일상 속 영감의 순간들이 표시된 '내면 지도'다.

‘서점 여행자의 노트’ 김윤아 작가가 기획한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이 4회차를 맞으며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답이 정해진 세상에서 질문의 힘을 되찾겠다는 이 실험적 수업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며 호응을 얻고 있다.

두 개의 투명한 지도가 만나는 순간

수업의 핵심은 '내면지도'와 '동네지도'를 각각 다른 색깔의 투명 포스트잇에 그린 후, 두 지도를 나란히 놓는 것이다. "동네를 오래 봐야만 발견되는 것"과 "10년 뒤에도 좋아할 나의 풍경"을 기록한 두 지도가 만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들이 드러난다.

“인식하지 못했던 나와 길을 다르게 보게 됐다”는 한 참여자의 말처럼, 수업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꾸는 경험을 선사한다.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진행되는 이 수업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교재가 된다. 사진예술 전문 미술관의 정적인 분위기와 삼청동의 문화적 맥락이 참여자들의 사유를 자극한다. 종로구 동네배움터 사업의 일환으로 '지붕 없는 박물관' 종로의 특성을 살린 이런 공간 활용은 학습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1회차 수업 전경./사진=종로구 동네배움터
1회차 수업 전경./사진=종로구 동네배움터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나누는 시간

"이 수업에서는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나눕니다. 정답이 없고, 오직 대답만 존재하는 질문들에 대한 응답은 시차를 두고 천천히 돌아옵니다." 김윤아 작가의 설명처럼, 참여자들은 각자 대답하고 싶은 질문을 골라 천천히 사색한다. 

수강생들의 반응은 이런 접근법의 효과를 보여준다. "내 단점의 장점을 적으며 처음으로 결핍이라 여겼던 것이, 나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거나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건 이름이 아니라 존재로 채우는 자리라는 주제에서, 호칭 아래 감춰졌던 요청과 기대를 처음으로 고민했다"는 성찰들로 이어진다.

시간을 건드리는 기록의 마법

이 수업에서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오늘 쓴 대답을 12월 첫 주에 엽서로 받거나, 세상이 기대했던 역할들을 봉투에 써보는 식으로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무엇을 썼는지보다 언제, 왜, 어떤 표현 방식으로 기록했는지, 그리고 누가 읽어주는지가 중요하다"는 김 작가의 설명처럼 기록을 쓸 때와 읽는 순간은 연결된다.

참여자들이 함께 기록하는 '작은 위로'들도 특별하다. "삶의 고통과 충격을 막아주는 것은 거대한 기쁨이 아니라, 작고 안정적인 정서 패턴"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미지근한 위로부터 요즘의 큰 위로까지 차근차근 아카이브해나간다.

동네가 살아있는 공동체로 변하는 경험

"수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한평 서점이라거나, 지구와 환경 관련 공간에서 주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는 참여자의 말은 이 수업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압축한다. 개인의 경험이 공유되면서 동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재발견된다.

매년 정원 마감과 대기 등록으로 이어지는 등 조용하지만 꾸준한 호응을 얻는 인기는 이러한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한 갈증을 보여준다. 자기 삶을 해석하고 주변과 감응하는 능동적 과정으로서의 교육. 민과 관, 그리고 예술가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실험이 오는 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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