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리뷰=김경은 기자] ‘한 철 입는 저렴한 옷’에 불과했던 SPA 브랜드는 이제 똑똑한 소비의 상징이 됐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인한 ‘삼중고’가 거듭되며 소비심리 위축이 계속되는 가운데, 품질 대비 가격이 저렴한 SPA 브랜드는 ‘갓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꾸준한 수요를 확보 중이다.
SPA 브랜드는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회사가 직접 맡아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로, 압도적인 가성비와 빠른 트렌드 반영이 특징이다.
SPA 브랜드 중 2012년 런칭한 탑텐은 2024년 매출 970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국내 SPA 브랜드가 ‘1조 클럽’을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모회사 신성통상의 SPA 브랜드 도전
탑텐의 모회사는 1960년대 수출 전문 기업으로 시작한 신성통상이다. 신성통상은 원래 GAP·아베크롬비와 같은 해외 패션 브랜드의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OEM(주문사 상표 부착 생산)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유니클로·자라 등의 국내 진출 기반으로, 한국 SPA 시장은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 진행된 한국경제 인터뷰에 따르면, 이 당시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글로벌 SPA 브랜드가 국내에서 매출 수천억원을 내는 현실을 보며 우리나라 브랜드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의류 제조사로서 이미 막강한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던 신성통상은 정면승부를 택했고, 그렇게 2012년 탑텐을 런칭하며 SPA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탑텐은 2013년부터 실질적으로 매장 확대에 나서며 매장 수를 늘려 나갔다.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첫 해 300억원이었던 매출이 공격적 매장 확대로 2013년 15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유니클로·스파오 등의 대형 SPA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적이었다. 런칭 후 5년간 실질적인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 셈이다.
물론 기회도 찾아왔다. 2018 평창 올림픽 공식 굿즈로 제작된 ‘평창 롱패딩’이 화제가 되며 당시 제조사였던 탑텐은 높은 관심을 받게 됐다. 일부 고객들은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전날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등 뜨거운 인기로 품절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창사 이래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NO 재팬’ 운동이 쌓아 올린 반사이익

탑텐의 두 번째 기회는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다. 2019년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가하며 시작된 ‘NO 재팬’ 운동으로 유니클로는 매출 직격탄을 맞았다.
유니클로의 빈자리를 꿰차고자 탑텐은 ‘애국 마케팅’을 펼쳤다. 염태순 신성통상 대표는 당시 히트 상품인 ‘에어리즘·히트텍’을 선보이며 ‘한국인에게 일본 내복 안 입히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유니클로의 대안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 잡은 탑텐은 2020년부터 본격적인 실적 개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가 발간한 ‘모바일 핫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탑텐몰이 유니클로 사용자 수를 처음 넘어선 것으로 기록됐다.
오프라인 매장 확대·텐텐데이

탑텐은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에 집중했다. 지난해 기준 탑텐의 매장 수는 677개로, 매출의 약 90%가 오프라인에서 발생했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텐텐데이’도 대표 할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텐텐데이는 매년 10월 10일에 10가지 상품을 만원부터 다양한 가격대에 구매할 수 있는 프로모션이다. 지난해 텐텐데이 행사에서는 이틀간 누적 매출 200억 원을 내며 여전한 흥행세를 보였다.
신성통상 자진 상장폐지 논란…편법 증여 의혹
하지만 신성통상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자진 상장폐지를 발표하며, 편법 증여 의혹이 불거졌다. 신성통상이 주요 주주인 비상장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을 통해 세금 부담을 줄이고, 경영권을 완벽하게 넘겨받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염태순 회장의 장남인 염상원 이사는 작년 상반기 기준 가나안의 45.63%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에 따라 형성된 부정적인 여론은 탑텐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때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주춤했던 유니클로가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면서 5년 만에 매출 반등에 성공했다. 그로 인해 반사이익을 누리던 탑텐은 올해 성장 가도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