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이어온 작업, 첫 개인전 '김창옥:위로의 흔적'으로 공개
MCM 창립 50주년 문화예술 프로젝트…9월 3~27일 청담 MCM HAUS서 개최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강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세요?”
누군가 건넨 질문 하나가 김창옥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노래의 후렴처럼,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물음이었다. 사람들에게 소통과 위로를 이야기해 온 그는 정작 자신의 위로가 어디에서 오는지 반년가량 생각했다고 했다.
그 답은 뜻밖에도 옻을 바르고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찾아왔다. 우연히 옻이라는 재료에 이끌려 시작한 작업은 몸을 움직이고 손을 쓰는 동안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는 일이 됐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는 노동 끝에 남은 것은 작품이자 스스로를 위로한 시간의 흔적이었다.
2일 열린 ‘김창옥: 위로의 흔적’ 기자간담회에서 김창옥은 첫 개인전을 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MCM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번 전시는 오는 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청담동 MCM HAUS에서 열린다.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작업실에 갔던 것 같아요"
김창옥이 작업실에서 작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이다. 처음부터 전시를 열거나 작가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의 출발을 무언가에 ‘끌렸다’는 말로 설명했다.
요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한동안 그릇을 사 모았다는 그는 당시에는 자신이 고른 그릇이 옻으로 마감됐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먼저 마음을 움직인 것은 색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였다. 옻이 얼마나 까다로운 재료인지도 작업을 시작한 뒤에야 알게 됐다.
그렇게 들어선 작업실은 대중 앞에서 말하던 일상과 다른 시간을 내줬다. 22년가량 강연을 이어오며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 속에 생각이 많아졌고, 지나온 일에 대한 후회도 쌓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겉보기에는 일이 잘되고 있는데 내부적으로는 건강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며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작업실에 갔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제주에서는 버려진 창고를 약 1년에 걸쳐 작업 공간으로 바꿨다. 초보자가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큰 일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한 달 동안 작업실에서 잠을 잘 정도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했다.
육체적으로 고된 시간이었지만, 몸을 쓰는 동안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은 오히려 줄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과거에 대한 후회가 작업에 집중하는 사이 조금씩 덜어졌다는 것이다.
“작업을 하면 생각이 줄고 필요한 생각만 남습니다.”
전시 제목 ‘위로의 흔적’도 이 경험에서 나왔다. 김창옥에게 작품은 위로를 얻기 위해 계획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작업하는 동안 위로가 지나가고 남은 흔적에 가까웠다.
바르고 기다리고 다시 덧입히며…옻에 남긴 시간
이번 전시에서 옻은 개인의 시간과 생각을 담아내는 표현 재료로 쓰인다. 바르고 기다리고, 표면에 상처를 내고 다시 덧입히는 과정을 거치며 작품에 깊이가 쌓인다.
그 과정에는 작가의 의도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도와 습도, 계절과 공기에 따라 표면은 예측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달라진다. 제주에서 태어난 김창옥은 제주의 비와 바람, 높은 습도가 남기는 변화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까다로운 재료를 다루는 일은 끊임없이 넘어야 할 문턱을 마주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김창옥은 옻이 작업자에게 ‘이래도 나한테 올 거야’라고 묻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 문턱을 넘으며 반복하는 작업 속에서 불필요한 생각들이 그물에 걸러지듯 사라졌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나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옻 자체의 물성과 표면에 쌓이는 흔적에 집중했다. 신작 ‘울다’는 균열과 주름을 통해 감정과 자연이 남긴 상처의 시간을 드러낸다. ‘선 없는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 그 긴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조화를 탐구한다.
첫 개인전이지만 김창옥은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보다 자신이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거듭 이야기했다. 작업을 가르쳐준 스승이 모든 기술을 전해주겠다면서도 “너는 네가 되어라”라고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건강한 제가 되고 싶습니다.”
MCM이 내민 손…강연장에서 전시장으로


이번 전시는 MCM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추진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MCM은 ‘프리즈 위크 서울 2026’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며 예술과 패션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김창옥은 자신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리기 전부터 MCM이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도 저를 작가로 초대하지 않을 때 MCM이 손을 내밀어줬다”며 첫 전시를 함께하게 된 인연을 전했다.
다만 향후 브랜드와의 협업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관련 이야기는 간담회 전날 처음 나왔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관심은 이미 다음 작업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김해리 MCM 대표는 김창옥이 선택한 옻이라는 소재와 추상적인 작품에 담긴 깊은 이야기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나전칠기보다 옻 자체에 집중한 작가의 시도를 소개하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의 특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그 정도로 열정적인 분을 본 적이 없다”며 김창옥의 작업에 대한 몰입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옻이라는 소재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날 청년들의 불안과 스트레스에 관한 질문에도 김창옥은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음악대학을 졸업했지만 음악가가 되지 못했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에는 선배와 동기를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온 그가 건네고 싶은 위로는 거창한 충고가 아니었다. 불안한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지치면 잠시 앉아 있다가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말보다는 제 마음이 담긴 얼굴 표정이나 눈빛을 남기면서 그런 시간을 한번 보내고 싶습니다. 마음이든 몸이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은 어디에서 위로받는지 묻던 질문 앞에서 김창옥은 오래 손을 움직였다. 이번 전시는 그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시간을 옻의 표면으로 펼쳐 보이는 자리다.
‘김창옥: 위로의 흔적’은 9월 3일부터 27일까지 청담동 MCM HAUS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