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마케팅까지 요구한 기획서…인바운드 업계 “여행업자 역할과 혼선 우려”
- 관통사협회 “현장 경험 살린 단순 아이디어 제안일 뿐, 개인 모객과는 무관해”
- OTA·FIT 확산으로 달라진 관광시장…기존 업역 경계도 흔들려

[편집자 주]여기, 두 개의 포스터가 있다. 언뜻 보면 제목만 조금 달라진 같은 공모전 포스터다. 하나에는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상품 공모전’, 다른 하나에는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이라고 적혀 있다. 공모주제는 같고 참가 대상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소지자로 동일하다. 신청과 작품 제출 일정, 대상 100만 원·최우수상 80만 원·우수상 50만 원의 시상 내용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여행상품’이라는 네 글자다.
한국여행업협회(KATA)는 지난 9월 1일 관광통역안내사의 무등록 여행업 행위 등에 대한 우려를 한국관광공사에 전달했고, 공사는 같은 날 ‘여행상품 공모전’을 ‘여행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으로 변경했다. 인바운드 여행업계의 문제 제기가 곧바로 공모전 명칭 변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단지 제목에 ‘여행상품’이라는 표현이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상품을 기획·운영하는 인바운드 여행사와 관광객을 현장에서 직접 안내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개인 모객과 직거래, 무등록 여행업, 상품 기획과 판매 영역을 둘러싼 문제가 겹치면서 두 업계의 골은 이미 깊게 파여 있었다.
이번 공모전은 갈등의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쌓여 있던 갈등을 밖으로 드러낸 계기였다. 이에 본지는 두 장의 포스터를 시작으로 인바운드 여행사와 관광통역안내사가 왜 서로의 영역을 경계하게 됐는지, 그 이면에 어떤 산업구조와 이해관계가 놓여 있는지를 3회에 걸쳐 추적한다.
▲여행상품 공모전과 업역 논란에서 시작해 ▲인두세와 덤핑관광, OTA를 통한 개인 모객, 관광통역안내사 수급 문제를 거쳐 ▲변화한 여행시장과 현행 제도의 간극까지 짚어볼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여행상품’ 네 글자가 포스터에서 사라진 과정이다.
1년 전 자문회의서 나온 제안…‘여행상품 공모전’으로
공모전의 출발점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관광공사는 본지 질의에 관광통역안내사의 역량 강화와 서비스 질 제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025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행업계 등이 참석한 ‘관광통역안내사 아카데미 운영 관련 자문회의’에서 관광통역안내사 대상 여행상품 공모전에 관한 의견이 제기됐고, 이를 올해 사업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공사의 공식 답변에는 당시 자문회의에서 여행업계의 제안이 있었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전체 참석기관과 참석자, 구체적인 논의 과정까지 파악하기 어렵다. 특정 단체가 공모전을 독자적으로 제안하거나 주도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확인되는 것은 자문회의에서 나온 의견이 올해 사업에 반영돼 지난 8월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상품 공모전’으로 구체화됐다는 사실이다.
취지는 분명했다. 관광통역안내사는 외국인 관광객과 여행 일정 상당 부분을 함께하며 관광객이 어느 장소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는지, 기존 관광코스에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파악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같은 현장 경험을 새로운 여행콘텐츠 아이디어로 발굴해 여행업계와 공유하는 것이 공모전의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이 취지가 실제 공모 내용으로 구체화되면서 불거졌다.
예산·마케팅 요구에 엇갈린 업계와 협회
당초 관광전문인력포털에 공지된 명칭은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상품 공모전’이었고, 제출 서류 역시 ‘여행상품 기획서’였다. 공모 내용에는 상품의 개요와 콘셉트, 구성뿐 아니라 판매를 위해 필요한 예산 산정과 마케팅·홍보전략 등이 포함됐다.
이 대목에서 인바운드 여행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광통역안내사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광콘텐츠와 코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자체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예산과 마케팅 전략까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아이디어 제안을 넘어 실제 여행상품의 기획·조성 영역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인바운드 업계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과 여행업 등록은 법적·사업적으로 다른 영역이며, 관광객 안내와 여행상품의 기획·모객·판매·운영 역시 구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개인 모객과 직거래가 현장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관광통역안내사를 대상으로 여행상품 공모전을 진행한 것은 두 업종의 역할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의 판단은 다르다. 박인숙 회장은 관광통역안내사가 외국인 관광객의 요구와 기존 관광코스에 대한 반응을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접하는 만큼, 이들의 경험을 새로운 관광콘텐츠 개발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복된 안내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공모전에 제안하는 것까지 여행업 영역 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선을 긋는 부분은 ‘모객과 판매’다. 관광통역안내사가 여행상품이나 콘텐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과 관광객을 직접 모집해 상품을 판매·운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협회 역시 개인 모객 등 여행업 관련 법령을 위반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회원들에게 상시로 주지시키고 있으며, 이번 공모전이 개인 모객이나 무등록 여행업을 허용하거나 장려하기 위한 사업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발굴된다면 실제 상품화 단계에서는 여행업 관련 제도와 필요한 절차를 거쳐 시장에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 협회 측의 시각이다. 결국 양측이 갈리는 지점은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경험을 활용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다. 어디까지가 현장 전문성을 활용한 ‘아이디어’이고, 어디서부터 여행업자의 ‘상품기획’ 영역인가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당일 명칭 변경에도 남은 ‘상품화’ 불씨
인바운드 업계의 문제 제기는 실제 공모전 명칭 변경으로 이어졌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9월 1일 KATA 측으로부터 관광통역안내사의 무등록 여행업 행위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공사는 같은 날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여행상품 공모전’을 ‘여행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으로 변경해 공지했다. 무등록 영업이나 모객 등 불법을 조장할 의도는 없었으며, 공모전의 취지를 명확히 하고 업계의 우려를 반영해 명칭 등을 수정했다는 설명이다.
논란은 ‘여행상품’이라는 네 글자를 빼는 것으로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명칭 변경으로 업역을 둘러싼 갈등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KATA의 문제 제기 당일 공모전 명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인바운드 업계가 관광통역안내사의 상품기획과 개인 모객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관광공사의 답변에는 추가로 확인할 대목도 있다. 공사는 당초 기획서에 예산 등의 항목을 포함한 이유에 대해 여행업계 관계자가 포함된 심사위원들이 ‘상품화 가능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기초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수상작의 향후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해당 아이디어를 공사가 상품화로 연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발굴해 여행업계와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상품화하는 후속 사업계획도 현재 없다는 설명이다.
상품화 연계 계획이 없다면서 굳이 판매 예산과 마케팅·홍보 전략을 요구하고 상품화 가능성을 심사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공모전의 목적이 현장 아이디어 발굴이었다면 어디까지를 ‘아이디어’로 보고 어디서부터 ‘여행상품 기획’으로 볼 것인지, 당초 공모전 설계에서 그 경계가 충분히 구분됐는지도 남은 쟁점이다.
흔들리는 업역 경계… 공모전보다 오랜 갈등
한국관광공사는 이번 질의에 답하며 변화하는 관광시장 환경을 언급했다. 개인화된 관광이 증가하면서 여행 형태가 다양해졌고, 이미 여행업 등록을 한 관광통역안내사가 OTA 등에 자신의 여행상품을 등록해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무등록 여행업자의 불법행위는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이 답변은 이번 갈등의 배경을 보여주는 단서다. 과거 인바운드 관광은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모집해 상품을 구성하고 관광통역안내사가 현장에서 안내하는 역할 분담이 비교적 분명했다. 그러나 개별자유여행(FIT)이 늘고 OTA와 SNS가 새로운 유통망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광객과 현지 서비스 제공자가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관광통역안내사가 여행업 등록까지 마치면 안내자이면서 동시에 여행업자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안내하는 사람을 과거처럼 일률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유통구조 속에서 인바운드 여행사는 기존 상품기획과 모객·판매 영역이 관광통역안내사의 역할과 혼재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관광통역안내사협회는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을 콘텐츠 개발에 활용하는 것과 실제 모객·판매는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공모전을 둘러싼 인바운드 업계의 문제 제기도 이러한 시장 변화와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공모전이 두 업계의 갈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흔들리고 있던 업역의 경계를 ‘여행상품’이라는 네 글자가 건드린 셈이다.
공모전 포스터에서 ‘여행상품’이라는 네 글자는 사라졌다. 그러나 두 업계 사이의 골이 메워진 것은 아니다. 그 밑에는 저가·덤핑상품으로 왜곡된 인바운드 시장의 수익구조, 관광통역안내사의 고용과 수입 문제, OTA를 통한 직접 거래의 확대, 특정 언어권 관광통역안내사의 수급 불균형 등이 얽혀 있다. 공모전은 그 구조가 밖으로 드러난 하나의 계기였다.
본지는 다음 편에서 중국 단체관광 시장의 덤핑상품과 이른바 ‘인두세’, 관광통역안내사의 개인 모객 논란, OTA를 통한 직접 거래, 소수언어권 관광통역안내사 수급 문제 등을 통해 두 업계의 골이 깊어진 구조적 배경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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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이번 기획 연재와 관련해 관광통역안내사와 인바운드 여행업계의 업역 갈등, 인바운드 관광시장의 이른바 ‘인두세(관광객 머릿수대로 지불하는 수수료)’ 및 덤핑관광, OTA·SNS 등을 통한 개인 모객과 무등록 여행업 등 관련 사례와 제보를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