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적자 컨벤션센터에 中 100대 여행사가 왔다…이희범이 그리는 ‘안동의 다음’
[인터뷰] 적자 컨벤션센터에 中 100대 여행사가 왔다…이희범이 그리는 ‘안동의 다음’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6.09.15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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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 “세계인이 찾아올 ‘안동만의 이유’ 만들어야”
- 1843억 투입 센터, 건물보다 ‘소프트웨어’ 채우기가 관건
- ‘안동판 다보스’ 인문가치포럼 육성…가양주·한옥 등 체류관광 연결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가 안동 관광과 안동국제컨벤션센터 활성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시설 중심의 MICE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관광·숙박·지역 소비까지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지난 11일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의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중국 100대 여행사 관계자들이 상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국내 관광업계 관계자들과 마주 앉았다. 지방공항으로 들어온 중국 관광객을 서울이 아닌 안동과 지역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놓고 상담이 이어졌다. 이튿날 이들은 하회마을로 향해 밤하늘을 수놓은 하회선유줄불놀이까지 직접 지켜봤다.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도 활용도와 적자 문제를 안고 있던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실제 관광 현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직 하나의 행사에 불과하지만, 컨벤션센터 안으로 사람을 불러들이고 다시 안동 곳곳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이 시설의 숙제를 압축해서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지난 11일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지방공항 연계 한중 관광업계 교류의 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 100대 여행사 관계자 등이 안동을 찾아 지방공항과 지역 관광을 연계한 방안을 모색했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 전경. 2022년 문을 연 컨벤션센터는 국제회의와 포럼 등 지속적인 콘텐츠 확보와 행사 참가자를 지역 관광·숙박·소비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사진=조용식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개최한 ‘2026 지방공항 연계 한중 B2B 트래블마트 및 교류회’에는 중국 100대 여행사 관계자와 언론인 등 112명이 참여한 메가 팸투어가 연계됐다. 강원·경남·경북·대구·전북·충북·충남 등 7개 지방정부와 여행업계가 참여한 상담에서는 약 700건의 비즈니스 상담과 79건의 계약이 이뤄졌다.

2022년 문을 연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는 국비와 지방비 1843억 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개관 이후 2022년 26억 원, 2023년 49억 원 등 매년 수십억 원의 운영 적자가 이어졌다. 건물은 지었지만 연중 공간을 채울 국제회의와 전시, 포럼이 충분하지 않았고, 어렵게 유치한 행사를 숙박과 관광·소비로 연결하는 것도 과제로 남았다.

최근 이곳에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자원부 장관과 한국무역협회장,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이희범 안동정신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건물을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안동에 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보스포럼 벤치마킹…건물보다 ‘콘텐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하드웨어는 갖췄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이 대표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컨벤션센터의 규모나 시설이 아니었다.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였다.

안동국제컨벤션센터 내부 행사장. 대규모 국제회의와 포럼, 기업행사 등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지만 연중 가동률을 높일 지속적인 MICE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지난 11일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지방공항 연계 한중 B2B 트래블마트’에서 한국과 중국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지방 관광상품 개발과 중국 관광객 유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국제회의와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참가자가 행사장을 나와 안동에서 숙박하고 먹고 관광하며 소비해야 컨벤션센터에 투입된 재정이 지역경제와 연결된다. 결국 시설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대표가 비교 대상으로 꺼낸 곳은 스위스 다보스다. 작은 산악도시인 다보스가 세계경제포럼을 통해 매년 세계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찾는 도시가 된 것처럼 안동에도 도시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국제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를 논하기 위해 다보스로 간다면, 인간과 공동체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안동으로 와야 합니다.”

그가 주목한 것이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이다. 안동에서 열리고 있는 이 포럼을 지역 단위 행사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석학과 문화·정치·경제계 인사들이 인간과 공동체의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적인 인문학 포럼으로 키워 컨벤션센터를 움직이는 핵심 콘텐츠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안동판 다보스’는 구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안동에 오는지, 어떤 의제를 안동에서 논의하는지, 그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확보하는지가 결국 포럼의 수준을 결정한다. 국제행사의 규모보다 지속적인 의제와 참가자의 수준, 해외 네트워크를 얼마나 축적하느냐가 관건이다.

‘추로지향’의 자산…왜 안동이어야 하나

“세계유산과 종가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안동은 ‘한국 속의 한국(Korea in Korea)’을 보여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왜 안동이어야 할까. 이 대표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하회마을을 찾았던 사례를 들었다. 공자의 후손인 공덕성 박사가 안동을 찾아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일컫는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표현했던 일도 언급했다.

울창한 숲과 계곡 사이에 자리한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안동은 세계유산뿐 아니라 영상콘텐츠와 자연경관을 결합한 관광자원을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밤을 밝힌 경북 안동 월영교와 월영정의 야경이 수면 위로 길게 비치고 있다. 안동은 낮 시간 문화유산 관람에 머물던 관광을 야간관광과 숙박으로 확장하는 것이 관광객 체류시간을 늘리는 과제로 꼽힌다. /사진=조용식 기자

안동에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를 비롯한 세계유산과 종가문화, 유교문화, 선비문화가 축적돼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된 K-컬처의 범위를 대중문화에서 한국의 전통과 정신문화까지 넓혀갈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판단이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관광객이 오래 머문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췄고 K-컬처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관광객 유치와 산업적 성과로 연결하는 힘은 아직 부족합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안동 관광의 다음 단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보존해 온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생활문화를 여행자가 직접 경험하고,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와 산업적 가치로 연결하는 것이다.

“결국 관광은 먹고 자는 문제입니다”

“관광객을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결국 안동에서 먹고 자고 경험하고 소비하게 해야 합니다.”

세계유산과 국제포럼이라는 큰 그림을 이야기하던 이 대표가 관광의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자 답은 오히려 간명해졌다. ‘체류’다. 아무리 좋은 문화유산과 콘텐츠를 갖고 있어도 관광객이 몇 시간 둘러본 뒤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면 지역에 돌아가는 관광 소비는 제한적이다. 접근성뿐 아니라 숙박 선택지와 서비스 수준, 음식, 야간관광과 체험 콘텐츠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안동의 전통 한옥 긍구당에서 방문객들이 툇마루에 앉아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는 안동 곳곳의 한옥과 종택을 연결해 지역 고유의 체류 경험을 제공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산자락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자리한 안동 분강서원. 안동에 산재한 서원과 종택, 한옥 등 전통문화 자산을 단순 관람에서 머물고 경험하는 관광으로 확장하는 것이 지역 관광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이 대표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안동 곳곳에 흩어진 전통 한옥 숙박시설의 네트워크화를 꼽았다. 개별 고택과 한옥을 각각의 숙박시설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예약과 서비스, 관광 프로그램을 연결해 하나의 체류 인프라처럼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전통음식과 술도 관광산업으로 연결할 자원으로 봤다.

“안동의 종가에는 집집마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음식과 술이 있습니다. 보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안동에 와서 직접 맛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동의 47개 종가에 전해지는 가양주(家釀酒)가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종가마다 이어져 온 술을 제례와 가문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관광객이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강조했다.

농암종택의 ‘일엽편주’는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종가에서 이어져 온 술이 정식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전통문화가 관광과 소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이는 단순히 전통주 한 병을 판매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종가를 방문하고, 그 집의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맛보고, 고택에서 머무는 경험까지 연결된다면 하나의 체류형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결국 안동 관광의 경쟁력은 새로운 관광지를 얼마나 더 만드는가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컨벤션센터 밖으로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컨벤션센터가 활성화됐다는 것은 행사장이 꽉 찼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안동 곳곳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가 인터뷰 도중 손짓을 하며 안동이 가진 전통문화와 정신문화의 관광산업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세계 사람들이 그 행사가 있기 때문에 안동에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에 설치된 줄불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비즈니스 상담을 진행한 중국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이튿날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선유줄불놀이를 관람하며 안동 관광콘텐츠를 직접 체험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이 대표의 구상은 결국 MICE와 지역 관광의 경계를 허무는 데 닿는다. 컨벤션센터에 수백 명이 모이더라도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면 지역경제에 남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대로 포럼과 국제회의 참가자가 하회마을을 찾고, 하회선유줄불놀이를 보고, 종가의 음식과 가양주를 경험한 뒤 고택이나 지역 숙박시설에서 밤을 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행사가 있기 때문에 안동에 간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 사람들이 ‘그 행사가 있기 때문에 안동에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안동의 다음’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그 참가자를 하회마을과 서원, 종가와 고택으로 보내고, 지역의 음식과 가양주를 경험하게 한 뒤 안동에서 하루를 묵도록 하는 구조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국제적인 행사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그 출발점에 있다.

지난 11일 중국 여행사 관계자들은 안동국제컨벤션센터의 상담 테이블에 앉았다. 다음 날에는 하회마을 백사장에 앉아 밤하늘에서 흩날리는 줄불을 바라봤다. 컨벤션센터에서 관광 현장까지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진짜 성적표는 그 다음부터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실제 안동 관광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통해 관광객이 안동을 찾고, 관광객이 한 끼를 더 먹고 하루를 더 머물며 지역에서 소비해야 한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역시 행사를 개최했다는 사실보다 그 포럼을 보기 위해 국내외 사람들이 스스로 안동행을 선택할 정도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1843억 원을 들인 안동국제컨벤션센터의 가치는 결국 건물 안을 몇 명으로 채웠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안동에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됐느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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