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례자 40만명 예상…등록 시작 2주 만에 8만 1820명
내년 8월 개최 앞두고 숙박·교통·폭염 대응계획 공개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손안의 화면을 켜면 수많은 사람의 일상이 펼쳐진다. 누군가의 합격과 취업, 새로운 성취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서로의 소식을 이토록 많이 아는 시대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까지 알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같은 도시에 살고 같은 지하철을 타면서도, 우리는 종종 타인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나 비교의 대상으로만 만난다.
“성취는 쌓여가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은 함께 쌓이지 않습니다.”

5일 서울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열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조직위원장 정순택 대주교가 짚은 것은 청년들의 불안이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좋은 일자리를 준비하고, 일자리를 얻으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삶. 하나의 과제를 마친 자리에는 곧 다음 과제가 놓인다.
내년 여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는 그 끝없는 증명의 일상에 다른 질문을 건넨다. 무엇을 이뤘는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서로를 한 사람으로 만나고 있는가. 이날 간담회에서는 그 만남의 의미와 함께 세계 청년 수십만명을 맞이할 숙박·교통·안전 등 운영계획이 공개됐다.
“스펙 대신 한 사람으로”…만남과 맞아들임의 용기
정 대주교는 언제든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으면서도 깊이 알기는 어려운 오늘을 ‘단절의 시대’로 진단했다.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AI를 비롯한 기술 변화까지 더해지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사람을 판단해온 기준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건넨 답은 명확했다. “사람의 가치는 증명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청년대회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믿음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걷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다. 정 대주교는 이러한 만남이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낯선 청년에게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가정과 공간을 여는 본당, 이들을 환영하는 지역사회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여는 일에도, 낯선 나라와 식탁을 찾아가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이를 “서로가 자기에게 익숙한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라며 “단절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만남의 용기이고 맞아들임의 용기”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홍보영상 ‘그런 대회 아닙니다’도 경쟁과 순위 대신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만남을 내세웠다. 또 다른 영상 ‘쫄지 마’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청년들의 용기를 담았다. 대회 주제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를 청년들의 일상과 연결한 메시지다.
등록 2주 만에 8만 1820명…내년 8월 서울로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는 전 세계 청년들이 교황과 함께 신앙을 나누고 문화를 교류하는 가톨릭 국제행사다. 이번 서울 대회는 17번째 국제대회로, 아시아 개최는 1995년 필리핀 마닐라에 이어 두 번째이자 32년 만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원회)는 특히 비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처음 개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한국에서 세계 청년들이 국경과 종교를 넘어 평화와 화합을 나누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서울 본대회는 2027년 8월 3~8일 진행된다. 앞서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전국 15개 교구에서 해외 청년들이 지역 공동체와 만나는 교구대회가 열린다.
조직위는 약 190개국의 해외 순례자 40만명과 국내 참가자 10만명 등 총 50만명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는 지난달 22일 등록을 시작한 이후 이날 기준 8만 1820명이 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등록 마감은 내년 5월 31일이다.
개막미사와 교황 환영행사, 십자가의 길은 상암 서울월드컵경기장 일대에서 진행한다. 밤샘기도와 파견미사 장소로는 서울공항을 제시했다. 마지막 파견미사에는 미등록 참가자까지 포함해 100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광화문광장 대신 상암을 선택한 배경에는 시민 불편과 안전 문제가 있었다. 조직위는 여러 날 도심 도로를 통제하는 부담을 줄이고, 경기장과 주변 광장 등을 함께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50만명의 잠자리와 한여름의 안전…환대를 뒷받침할 조건

질의응답에서는 대규모 만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질문이 이어졌다. 우선 과제는 숙박이다. 조직위는 성당과 홈스테이, 학교 체육관·강당, 대학 및 공공시설 등을 활용해 50만명을 수용할 공동숙박시설을 확보할 계획이다.
서울대교구가 본당과 홈스테이 등을 통해 27만명, 서울시·교육기관·다른 교구 등을 통해 23만명 규모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이 주교는 217개 성당에서 수용 인원을 협의하고 홈스테이 신청을 받고 있으며, 사설기관과 사립학교 등으로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학교와 홈스테이를 제외한 공공시설에서 4만명 규모의 숙박 공간 확보를 목표로 한다. 정부도 교육부·서울시교육청 등과 학교 활용 범위 및 계약 조건을 협의하고 안전점검을 추진할 예정이다.
8월 야외행사인 만큼 폭염 대응도 주요 쟁점이었다. 이 주교는 그늘과 냉방 쉼터, 식수 공급, 살수, 개인 냉각 지원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중 이동 시뮬레이션으로 밀집·정체 위험 구간을 점검하고, 현장에서는 CCTV와 AI 기반 밀집도 분석을 활용할 계획이다.
기상 악화에 따른 행사 축소·중단·재개 기준은 관계기관과 협의해 매뉴얼에 담는다. 주요 행사장에는 냉방 응급의료시설과 전문 의료진을 배치하고 병원 이송체계도 마련한다.
조직위는 서울공항 행사장에 주변 철도역에서 내려 약 2.8~4㎞를 걸어 접근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동 중 식수와 더위를 식힐 공간을 준비한다는 설명이지만, 한여름 도보 이동인 만큼 참가자의 체력과 대기시간을 고려한 세밀한 운영이 필요해 보였다.
서울시 측은 안전 우려로 행사 시기 변경 가능성도 문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학교 방학과 국내외 휴가 일정, 숙박시설 활용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일정을 늦추면 개학 준비로 학교시설 활용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종교의 경계 넘어, 한국의 골목과 식탁으로

조직위는 가톨릭 행사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다른 종교와 비신자에게 참여의 문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미사와 기도 외에도 젊은이 축제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걸 통해서 우리가 가톨릭 교세를 확장하겠다 이런 욕심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러 종교의 청년들이 교황과 함께하는 프로그램과 국내 종교계의 협력을 담은 공동성명도 준비 중이다.
장애가 있는 순례자를 위해 단차 없는 이동 동선과 휠체어 이용 공간, 동반인 좌석, 감각 휴식 공간을 마련한다. 주요 프로그램에는 수어와 자막을 제공하고 이동 지원과 대피 안내를 담당할 전담 창구도 운영할 계획이다.
본대회에 앞선 교구대회는 세계 청년들이 한국의 일상과 만나는 시간이다. 인천과 수원에서는 문화교류 공연을, 의정부에서는 DMZ 일대에서 분단과 평화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광주대교구는 전통문화·음식 체험과 전통시장 미션투어 등을, 마산교구는 K팝과 국악, 클래식을 아우르는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지역 상권과의 연계도 추진한다. 전통시장 방문과 지역화폐·바우처 활용, 행사장 인근 음식점·편의점과 연계한 식사 제공 등을 통해 해외 청년들의 체류가 지역 소비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은복 서울 세계청년대회 지원단 부단장은 이번 대회를 한국 문화의 매력을 알릴 기회로 기대하며 관계기관과 실질적인 지원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은 홍보대사 배우 김태희의 응원영상과 희망·용기를 상징하는 공식 마스코트 ‘호비·코비’도 공개됐다.
정 대주교의 말처럼 사람의 가치가 증명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을 찾는 청년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환영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화면 속에서 서로의 성취를 확인하던 이들이 잠시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 무엇을 이뤘는지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만남이 내년 여름 서울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