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백동화 위조 사건
[역사속 경제리뷰] 백동화 위조 사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4.14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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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백동화는 1892년부터 1901년까지 발행한 구한말 동전이면서 조선 최후의 동전이었다.

대한제국 당시 은본위제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동전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유통이 됐는데 문제는 위조 동전이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리게 되면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일본에 예속됐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일본 식민지화가 되는데 백동화 위조 사건이 있었다.

은본위제로 전환하면서

대한제국은 은본위제로 전환하면서 백동화를 주조했다. 그중에 2전 5푼 백동화가 유명했는데 25배 가치에 비해 제조 비용이 낮았기 때문에 조선 조정으로서는 발행이 쉬웠다.

근대적 화폐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위조 주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만한 기술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일본에서 들여온 주조 기술이기 때문에 일본 상인은 쉽게 위조가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국내 사람들은 위조 화폐를 만들어 낼 수 없었지만 일본 상인은 쉽게 위조 화폐를 만들어냈다. 일본 상인은 계속해서 백동화를 위조해서 주조했고, 그것을 시중에 풀어버렸다.

여기에 조선 조정은 재정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백동화를 주조했다. 즉, 시중에 너무 많은 백동화가 풀린 것이다.

인플레이션 발생 그리고 식민지화

시중에 많은 백동화가 풀리게 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1902년 ‘한국의 백동화 위변조범 처벌령’까지 제정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 경제를 망가뜨렸다.

이에 광무 2년인 1898년 백동화 위조를 두고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관계가 좋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 시내 유통된 화폐의 25% 정도, 평양에서는 80% 정도가 위조 백동화였다. 오죽하면 탁지부 재정 고문으로 고빙된 러시아 알렉시에프는 1898년 2월 22일로 은화 통용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의 압력에 의해 7월 11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한제국은 1901년 금본위제로 전환하고 그에 따른 화폐를 발행했다. 문제는 백동화를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이 화폐정리사업을 진행하고, 전환국을 없애버렸으며, 이 과정에서 결국 대한제국 경제는 일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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