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싱하이밍 중국 대사 그리고 위안스카이
[오늘 통한 과거리뷰] 싱하이밍 중국 대사 그리고 위안스카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6.1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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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논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난 13일 비판했다.

정부와 대통령실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또한 “중국대사라 하니 2인자라도 되는 줄 알고 못 만나서 안달 난 부분이 있는데 예의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면서 이 대표를 겨냥했다.

20대의 위안스카이

위안스카이의 경력은 조선에서 시작됐다.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왕실은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청나라는 우창칭에게 6개 부대를 이끌고 출병을 했고, 위안스카이는 우창칭의 휘하로 참전했다.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의 수괴로 흥선대원군을 지목했고, 톄진에 연금하고 임오군란을 진압했다. 그리고 본대가 철수했지만 1894년 청일전쟁 직전까지 조선 주재 청국 공사 역할을 하면서 조선 총독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조선 조정은 20대의 위안스카이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정도로 위안스카이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에 조선은 식민지배의 일종인 보호국으로 전락했으며, 조선의 마지막 자주적 근대화 기회를 봉쇄했다. 해관 통합, 차관 전담, 전선부설권 선점, 기선 운항 등을 강요했고, 계속해서 고종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위안스카이는 조선의 내정간섭의 대명사가 됐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게 된 것도 사실상 청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는 차원이었고, 친러파나 친일파 등이 나오게 된 것도 청나라 내정간섭에 대한 염증을 느끼면서 다른 나라에 의존해서 자주국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받게 됐다. 남의 나라에 의존해서 자주국이 되려고 했던 그 부작용은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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