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만리장성
[역사속 경제리뷰] 만리장성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7.19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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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만리장성은 중국의 성벽으로, 흉노족이나 몽골족과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국시대 건설이 시작되어 후대 왕조에 의해 확장, 보수되어 온 인류 최대의 성곽 구조물이다.

흔히 진시황 때 쌓은 성이라고 알고 있지만 오늘날 형태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이다. 전국시대부터 명나라 이전까지의 성의 형태는 ‘토성’이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국경선 철조망과 같은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리장성 쌓은 이유

만리장성은 전국시대인 초나라가 영토와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이 최초이다. 고대의 군대는 크게 ‘기병’ ‘보병’ ‘궁수’로 나뉜다. 이중 가장 무서운 것이 ‘기병’이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탱크’이다. 기병을 막기 위해서는 성이 필요했다. 굳이 높거나 튼튼한 성이 아니더라도 말이 넘기 힘들 정도의 성이면 충분했다.

이런 이유로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유목민족들의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을 이용한 기동력이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빠른 속도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기병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런 유목민족의 빠른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토성이었다.

토성이 있으면 유목민족 기병의 빠른 남하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경계선

이런 만리장성(토성)의 또 다른 기능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경계선이다. 유목민족이나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경계선을 넘어가게 되면 서로 다른 문화권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됐다.

농민들로서는 해당 경계선을 넘어가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땅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고, 유목민족으로서는 해당 경계선을 넘어가면 가축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했다.

아울러 중국 장안이나 베이징 혹은 남징 등 수도에서부터 아랍권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길잡이’ 역할까지 했다. 즉, 해당 루트를 따라 움직이면 유럽까지 상단을 이동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벽돌로 바뀌게 된 이유

오늘날과 같이 벽돌로 이뤄진 만리장성은 명나라 대 이르러 제11대 세종 가정제 때 몽골족의 알탄 칸이 베이징을 포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중국은 몽골의 침략으로 원나라까지 세워졌던 경험을 했던 국가이다.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만리장성은 유목민족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였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방어용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벽돌을 찍어내는 기술이 점차 발전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벽돌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지만 명나라 때부터 벽돌을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에 따라 벽돌로 만든 성벽을 올릴 수 있었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 당한 것이 아니라 이자성의 난으로 인해 멸망 당했다는 점에서 만리장성은 청나라 군대를 막는데 있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다만 이자성의 난 당시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지원군으로 청나라 군대에게 문을 열어줘 결국 청나라가 명나라를 접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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