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일본 그리고 전쟁특수
[역사속 경제리뷰] 일본 그리고 전쟁특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02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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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한 장면.
영화 명량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전쟁특수는 전쟁이 발발하거나 준비할 때 군인들이 전장에서 사용하는 필수품이 요구됨에 따라 발생하는 특별수요를 말한다. 전쟁특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일본은 전쟁특수를 톡톡히 누린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전쟁특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한때 미국을 위협할 국가가 됐다. 하지만 그 전쟁특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점차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30년’으로 가고 있다. 이에 일본은 여전히 ‘전쟁특수’를 꿈꾸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로 인해 일본은 전쟁특수를 누리게 된다.

전쟁특수 누린 국가, 일본

일본은 전국시대 동안에는 다이묘끼리 전쟁을 하면서 전쟁특수를 누렸다. 일본은 본질적으로 평야보다는 산악이 많은 지대이고, 지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국가이다. 이런 이유로 식량 생산량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약탈 경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에 전국시대에는 다이묘끼리의 전쟁을 통해 약탈 경제를 누렸고, 그것이 전쟁 특수가 됐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 하면서 새로운 전쟁특수를 만들어야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됐고, 이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은광 개발 등을 통해 유럽과의 물자 교역 등을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이뤄지면서 그에 따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그런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표본으로 ‘프로이센 총력전 경제’를 따라갔다. 문제는 프로이센 총력전 경제라는 것이 결국 전쟁특수를 의미한다.

청일전쟁 당시에는 조선 백성들에게 군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물자를 약탈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청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승리를 했다.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받으면서 근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만주로의 진출이 가능하게 되면서 일본은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했고, 한반도를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면서 그에 따라 전쟁특수로 경제호황을 누리게 됐다.

일본이 전쟁특수를 누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연합군 편에 서면서 유럽이 산업기반 시설이 붕괴되자 그 틈을 비집고 자국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을 유럽 전역에 판매하면서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무단통치를 가하면서도 일본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영화 진주만 한 장면.
영화 진주만 한 장면.

제1차 세계대전 끝난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끝나면서 일본은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그 이유는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이뤄지면서 굳이 일본산 제품을 구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그러면서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이나 노동자 파업 등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다.

그것을 타개하는 방법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으로는 ‘총’과 ‘칼’ 이외에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일본 정가에서 점차 군인 출신이 지도부에 앉는 사례가 발생하고, 군부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수탈하면서 타개를 하려고 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만주국과 한반도 등에서 물자를 약탈해서 자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식민지 시장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영화 고지전 한 장면.
영화 고지전 한 장면.

패망 직후 한줄기 빛, 한국전쟁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은 낙농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야만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5년 후인 1950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 즉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그러면서 일본은 병참기지가 됐다. 오죽하면 요시다 시게루가 “이제 일본은 살았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들을 위한 군수품을 생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최신 기술을 손에 넣고 미국식 대량생산 기술을 배웠다.

이와 더불어 베트남에서도 전쟁이 터지면서 우리나라도 전쟁특수를 누렸지만 일본은 더욱 누리게 됐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식됐지만 냉전은 계속 이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계속해서 경쟁을 하면서 동북아의 최전선인 일본을 미국은 계속 관심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일본은 냉전특수를 누리게 됐다.

플라자합의 그리고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그런데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 플라자 합의와 1990년대 초 버블경제에 의해 붕괴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보다도 가장 큰 타격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다.

냉전시대에는 일본제품이 품질이 좋으면서 저렴했기 때문에 서방국가의 시장에서 먹혀들어갔지만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중국산 제품이 전세계에 풀리게 되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세계시장은 관심도가 떨어지게 됐다.

아울러 일본 제품의 틈새시장을 노리고 들어온 제품이 바로 한국산 제품이다. 그러면서 점차 한국산 제품이 일본 제품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산 제품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국지전은 발생했지만 더 이상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으면서 일본의 전쟁특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서 ‘잃어버린 10년’에서 ‘잃어버린 30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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