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길은 애정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 김정호를 닯은 사내, 신정일
[인터뷰] “길은 애정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 김정호를 닯은 사내, 신정일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3.08.29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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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의 자존심을 건드린 전화 한 통, 해파랑길을 만들다
- 부산 오륙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km, 세 차례나 걸어
- 그물코처럼 촘촘히 짜인 길을 찾고, 잇고, 걷는 도반의 삶
신정일 문화사학자는 "화랑들의 순례길이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선망의 대상인 관동팔경이 줄을 서 있는 곳이 해파랑길"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신정일 문화사학자는 "화랑들의 순례길이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선망의 대상인 관동팔경이 줄을 서 있는 곳이 해파랑길"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저는 15년 전인, 2007년 19일 동안 동해안을 걸으면서 신라시대의 화랑을 만났고, 조선의 선비와 마주쳤습니다. 그들이 왜, 동해를 따라 길을 걸었는지는 아름다운 국토가 저에게 대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뜨겁게 느꼈던 첫인상의 기억 그대로 ‘해파랑길 인문 기행’에 기록했습니다.”

2007년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750km 구간을 가장 먼저 답사한 신정일 문화사학자는 15년 전 그대로의 기억으로 ‘해파랑길 인문 기행’을 출판했다. 기자와 만난 그의 첫 마디는 해파랑길을 만들게 된 과정이다.

푸른바다와 기암괴석들의 웅장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해파랑길. /사진제공=신정일 문화사학자
푸른바다와 기암괴석들의 웅장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해파랑길. /사진제공=신정일 문화사학자

“2006년이던가, 한겨레의 모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어요. ‘해양수산부에서 전남 목포에서 경기도 김포까지 서해안을 도보 답사해 책을 내자’는 제안이었죠. 지도를 펼쳐보니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너무 커서 몇 달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신정일 작가는 그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동해안을 하면 어떻겠는가? 동해안은 약 20일 정도면 걸을 수 있겠다”라고 했더니 “어촌이 발달한 해안을 중심으로 취재해야 하기 때문에 동해안은 힘들겠다”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신정일 작가는 “언제 내가 나라의 지원으로 길을 걸었던가? 내친김에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2월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회원 15명과 함께 길을 나섰다. 19일간의 여정으로 부산시 남구 오륙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미지의 길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당시 답사팀 이름은 ‘동해 바닷가를 걷는 동해 트레일’이었다. 그는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며 국토의 숨결을 느꼈다. 이 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이나 중국의 ‘차마고도’,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과는 전혀 다른 길임을 깨달았다. 

동해 트레일은 화랑들의 순례길이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관동팔경이 줄을 지어 서 있으며, 오천 년 역사의 숨결이 서린 현장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길임을 걷는 내내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문체부에 ‘동해 트레일’을 국가 정책으로 조성 제안

신정일 작가가 동해 트레일을 걷고서 책을 마무리할 2008년 초에 문체부의 담당 사무관인 홍성운 씨에게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트레일인 ‘동해 트레일’을 국가 정책으로 조성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문체부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0년 9월 그렇게 ‘해파랑길’은 탄생하게 된다.

신정일 작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밝힌 울진 망양정. /사진제공=신정일 문화사학자
신정일 작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밝힌 울진 망양정. /사진제공=신정일 문화사학자

“해파랑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어요. 울진 사동항에서 망양정해수욕장 구간입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모래사장을 지나 바로 앞에 언덕이 보이는 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망양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동해를 감상해 보시면, 정말 황홀감에 푹 빠지게 될거예요.”

산포리 바닷가 후리마을 북쪽으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왕피천이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곳, 그곳 산모퉁이에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는 망양정이 있다. 

원래 기성면 망양리에 있던 망양정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세워진 지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고종 19년인 1883년 울진 현령 이희호가 임학영과 더불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으나, 곧바로 허물어져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1959년 8월 강원도와 울진교육청이 협력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고려 말 문장가인 이곡은 “말머리 관동 땅에 길이 다하려 하는데, 기이한 경치 눈을 스치고는 이어 없어지네.”라며 울진을 노래하고, 통일신라시대 김유신은 “산림이 울창하고 바다에 이어져 진귀한 물산이 풍부하다”고 감탄하여 지어진 이름이 ‘울진’이라고 한다. 

해파랑길에서 만난 국토의 아름다움과 인문학 이야기 담아

그가 해파랑길 전 구간을 완주한 횟수는 2007년, 2011년, 2017년 등 세 차례인데, 2011년 경주 부채꼴 주상절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군부대가 이 지역을 지키고 있어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우리 땅 걷기 답사 팀에게는 허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길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진=조용식 기자
"길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진=조용식 기자

해파랑길을 걸으며 만나는 인문학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화랑의 이야기 깃든 연오랑세오녀, 처용과 박제상 이야기, 경주의 문무왕 수중릉과 이견대, 호미곶과 칠포의 바위그림, 영덕의 신돌석 의병장, 월송정과 망양정이 있는 관동팔경, 죽서루와 경포대를 거치면 설악산이 지척이고, 청간정을 지나 고성에 이르면 통천의 총석정 등이 있다. 

“장소가 회상시키는 그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키케로,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신정일 작가는 “한국의 바다와 산이 얼마나 절경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동해안 곳곳에는 수많은 인물의 흔적들이 민담으로 설화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설명하며 “길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 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이죠.”

그는 여전히 길을 걷는다. ‘그물코처럼 촘촘히 짜인 길을 찾고, 잇고, 걷다가 보면 새로운 문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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