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유신 붕괴 단초 제공, YH 장용호 전 사장 별세
[오늘 통한 과거리뷰] 유신 붕괴 단초 제공, YH 장용호 전 사장 별세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2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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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당사를 점거한 YH무역 여공들.
신민당 당사를 점거한 YH무역 여공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유신 정권 붕괴의 단초를 제공한 ‘YH사건’ 배경의 당사자인 YH무역 장용호 전 사장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고인인 장 전 사장은 뉴욕한인회 회장을 역임했지만 국내에서는 YH무역 관계자로 유명하며, 유신정권 붕괴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가발 시장 성장세

장 전 사장은 1962년 12월부터 뉴욕 KOTRA 한국 무역관에서 근무했다. 당시 미국 가발 시장 성장세를 주목했다.

미국 가발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64년 10월 중공의 핵실험 때문이다. 당시 미국 가발 시장의 90%는 중국산이었다. 그런데 중공 핵실험으로 인해 중국산 가발의 수입이 중단됐다. 그러면서 미국 가발 시장에서 중국산 가발이 사라지게 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게 됐다.

이것을 장 전 사장이 주목을 하면서 1965년 서울 왕십리에 YH무역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종업원 10여명의 소규모 공장으로 시작했다. 설립 4년만인 1970년 공장 노동자가 4천여명으로 증가하면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재계 15위를 기록했다.

1970년 사양산업으로

YH무역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YH무역 소속 여공들의 꼼꼼한 바느질 덕분이었다.

미국 가발 시장의 90%를 차지한 중국산은 중국산 머리카락을 이탈리아가 수입해서 가공을 한 후 미국에 파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YH무역이 한국인 머리카락을 여공을 통해 가공을 해서 미국 시장에 내놓자 날개 듣힌 듯이 팔려나갔다. 워낙 꼼꼼한 바느질 솜씨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YH무역은 고속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베트남 전쟁이 1975년 종료되면서 동남아가 정치적으로 안정을 취하게 됐고, 동남아에서 생산한 가발이 미국 시장에 진출을 하게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건비가 상승을 하게 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동남아에서 생산한 가발과 가격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그것은 가발산업의 사양화를 의미한다. 장 전 사장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YH무역 자산을 미국으로 빼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임금은 밀리기 시작했고, 1979년 3월말 ‘4월 말에 폐업한다’는 공고문이 붙여졌다. 노동조합은 사주가 재산을 빼돌리고 위장폐업을 한다면서 항의를 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

YH무역 여공들과 대화하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YH무역 여공들과 대화하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신민당 당사로

YH무역 소속 여공들은 자신의 처지를 대외에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신민당 당사 점거를 생각했다. 이에 8월 9일 농성장을 신민당 당사로 옮겼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이들을 받아주고 정부부처에게 고용 승게와 전직 그리고 회사 정상화 등 대안을 타진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강경했다.

이에 결국 강경 진압을 하기로 결정하고 여공들 역시 8월 10일 긴급총회를 열고 ‘죽음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영삼 총재는 “내 이름 석 자와 신민당의 이름을 걸고 조속히 여러분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1일 새벽 경찰은 끝내 강경진압에 나섰고, 김영삼 총재와 의원들이 끌려나가고 여공들이 끌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씨가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갔지만 사망했다.

김영삼 제명으로 이어지고

이같은 사실이 미국에도 알려지면서 미국 국무부가 ‘잔인한 폭력 사용 개탄한다’는 대변인 논평을 냈고, 박정희 정부는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김영삼 총재는 뉴욕타임스 9월 16일자 인터뷰를 통해 YH무역 사태를 언급하면서 “카터 행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소수 독재 정권’에 대한 지원을 끝내라”며 “미국이 점점 더 국민으로부터 소외된 독재 정권이냐, 아니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다수냐를 분명하게 선택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해당 발언을 문제 삼았고, 국회의원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제명처리했고, 한달도 안돼 10.26 사건이 발생했다.

장 전 사장은 해당 사건이 있은 후 미국으로 떠나 뉴욕한인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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