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가쓰라-태프트 밀약
[역사속 경제리뷰] 가쓰라-태프트 밀약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25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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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능 홍릉 석조상 위에 올라타서 약혼자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요구한 엘리스 루스벨트
명성황후의 능 홍릉 석조상 위에 올라타서 약혼자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요구한 엘리스 루스벨트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가쓰라 테프트 밀약은 1906년 7월 29일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 전쟁부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을 말한다.

밀약의 내용은 일본 제국의 우리나라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이 없고, 말 그대로 밀약은 종이 등의 형태가 없이 두 사람 간의 구두 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밀약이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다가 미국 역사학자 타일러 데네트에 의해 1924년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밀약으로 인해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왜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에 눈 감아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내용은 미국이 일본이 필리핀에게도 야욕을 부리기 시작하자 선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즉, 미국이 필리핀에 대한 지배를 할테니 동아시아 특히 조선반도에서 어떤 행위를 하든지 눈 감아 주겠다는 것이었다.

19세기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캘리포니아 등 태평양을 확보하면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후 동아시아에 닿았다. 그리고 1853년 7월 8일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일본이 개항됐고,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등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좌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은 1902년 1월 30일 영국과 일본이 체결한 영일동맹이다. 당시 최강국이 영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일동맹은 미국에게는 동아시아 진출에 대한 좌절을 하게 만들었다.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영향력을 갖고 있던 필리핀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이에 미국은 영국을 등에 업고 있는 일본의 필리핀 지배 야욕을 꺾을 필요가 있었고, 결국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더 이상 일본이 필리핀으로의 영향력 확산을 막아야 했다.

대한제국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

게다가 일본이 러일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냈으니 미국 입장에서 일본이 ‘고마운(?) 존재’였고, 이에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 반도를 점령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당시 고종황제는 미국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저지하려고 했고, 1905년 9월 루스벨트 딸이 대한제국을 방문하려고 하자 고종황제는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했다. 엘리스 루스벨트가 대한제국을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7월에 체결된 이후였기 때문에 엘리스 루스벨트의 방한은 그야말로 상대국가에 대한 무시로 점철됐다.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방문했는데 코끼리 석수에 올라타서 사진을 촬영했다. 대한제국 측 인사들은 분노했지만 이의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이미 알고 있었던 엘리스 루스벨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냥 하찮은 나라에 방문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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