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시오니즘
[오늘 통한 과거리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시오니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0.1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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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무력충돌이 장기화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무력충돌로 인해 1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가자지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 레바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에 대해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제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시오니즘

시오니즘이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이 자신의 조당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민족주의 운동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실현됐다.

시온은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이스라엘인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시오니즘이 불게 된 것은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게 된 가운데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반유대주의의 뿌리 깊은 앙금을 목격한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에 의해 시노이즘 협회가 창설됐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오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1893년 빈의 유대인 대학생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Nathan Birnbaum; 1864-1937)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폴란드 일대에서 생활했던 유대인 좌파 노조는 자본주의 착취와 제국주의 폭압에서 벗어나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신천지를 개척하자는 메시지가 퍼져 나갔다.

다만 본격적인 유대인 이주가 시작된 것은 러시아 제국의 포그롬(반듀애주의 폭동)에 의해서이다. 러시아에서 반대유대주의가 확산되면서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역시 대규모 이동을 시작하면서 일부는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갔다.

벨푸어 선언 이후

이런 가운데 1917년 영국 외무부 장관이던 아서 벨푸어가 유대인의 땅을 되찾아 주겠다면서 벨푸어 선언을 했다. 팔레스타인을 영국의 힘으로 빼앗아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만들어 버린 다음 유대인을 거주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이 벨푸어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당시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땅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은 결국 독립운동을 통해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

중동지역에 아랍 영향권을 확장하고 싶었던 아랍인들은 유대인을 외부 침입자로 간주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지원을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욱이 주변국 역시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주변국은 팔레스타인을 자기들 영토라고 생각하면서 국제사회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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