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7일 수에즈 운하 개통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7일 수에즈 운하 개통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1.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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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69년 11월 17일은 수에즈 운하가 개통한 날이다.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인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거리가 대폭 줄어들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나아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유럽에서 출발해서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해서 희망봉에 도착하고, 다시 인도양을 거쳐 목적지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가 개통이 되면서 지중해에서 홍해로 그리고 인도양으로 이어지게 됐고, 그로 인해 거리가 대폭 단축됐다.

그동안 계속 운하 파려고 했지만

수에즈 운하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구상을 해왔고,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운하를 개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오늘날과 같은 수에즈 운하를 계획했던 것은 1805년 메흐메트 알리 파샤가 오스만령 이집트의 대총독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시작했다. 서방과 적극적으로 접촉해 군사력을 키웠고, 1841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이후 메흐메트 알리와 우호관계를 맺은 프랑스가 주도해 운하 개통을 위한 주식을 공매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페르디낭 M. 레셉스(Ferdinand M. Lesseps)로 메흐메트 알리 사후 그 아들 사이드 파샤가 이집트의 새 지도자가 되자 운하 건설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이에 이집트 법인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에 운하의 운영권을 양도하고 99년간 운영 후 운영권을 이집트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자금 조달의 문제

다만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사막지대에 땅을 파내야 하는 난공사이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소요됐다. 워낙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하고, 투입 대비 효율성이 클지가 의문이면서 난색을 표한 투자자들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자금을 마련해도 영국은 끊임없이 방해를 했다. 그 이유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이 되면 프랑스에게 막대한 이익이 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에즈 법인은 이집트 회사이며 프랑스 정부는 어떤 권리가 없다는 최종 합의를 받았고, 공사 시작 10년만에 1869년 11월 17일 수에즈 운하가 개통됐다. 이 과정에서 9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비용은 처음 주식을 공모할 때의 예상치의 2배 이상으로 들었다.

운하를 처음 통과한 선박은 영국 해군 연안포함 HMS 뉴포트(Newport). HMS 뉴포트 등이다. 이들은 운하 공식 개통 전날인 16일 모든 조명을 끄고 몰래 운하를 통과했다.

운하 개통 2년 만에 프로이센-파릉스 전쟁이 터졌고, 프랑스가 패배를 하면서 영국의 지배로 들어갔다. 영국의 지배로 되면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트 함대가 수에즈 운하 통행을 영국으로부터 거절당했고, 결국 아프리카를 돌아 일본으로 가면서 결국 해전에서 참패를 해야 했다. 일본 해군은 먼 거리를 돌아온 러시아 발트 함대를 맞아서 박살을 내면서 결국 한반도를 집어 삼키게 됐다. 만약 러시아 발트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면 한반도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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