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0일 독립문 완공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0일 독립문 완공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1.20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문화재청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97년 11월 20일은 독립협회가 서대문구에 독립문을 세운 날이다. 독립문은 대한제국 당시 유럽식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다.

독립문은 청나라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원래 영은문 자리였지만 청나라가 유럽 열강에 식민지화되자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어버렸다.

청나라부터 독립을 의미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청일전쟁 이후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청나라는 패전을 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조공관계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자주독립국을 확인했다. 이에 영은문이 철거됐다.

이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친일 인사들이 모두 복권됐다. 이에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서재필이 조선으로 건너오게 됐고, 1896년 1월 중추원 고문이 되면서 독립문 건립운동을 벌였다.

다만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상당수 친일 관료들이 숙청됐지만 서재필은 미국인으로 간주되면서 숙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됐고, 독립문 건립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독립문 건립 추진위원회가 독립협회가 된 것이다.

서재필은 파리의 개선을 토대로 기본 스케치를 했고, 한국인 건축가 심의석이 시공ㅇ르 담당했다.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독립협회는 이를 지지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제국이 독립문을 철거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인들을 청나라의 지배로부터 독립시켜줬다는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편액 글씨는 누가

독립문의 편액 글씨를 두고 누가 썼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첫째는 이완용이고, 두 번째는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이 썼다는 것이다.

이완용이 썼다는 근거의 기록은 ‘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자에 게재된 ‘내 동리 명물’이란 고정 연재물에 실린 글이다.

다만 이완용이 한문 사료는 많이 남아있지만 한글 사료가 없기 때문에 현재 필적 대조는 불가능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