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빙그레 2탄
[기업HI스토리] 빙그레 2탄
  • 김희연 기자
  • 승인 2024.01.11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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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빙그레하면 떠오르는 대표 제품은 ‘뚱바’라 일컫는 ‘바나나맛우유’, 전국민 단골 인사인 “올 때 메로나”의 주인공 ‘메로나’ 아이스크림, 떠먹는 요거트 대명사 탄생 시초인 ‘요플레’,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스테디셀러 ‘투게더’가 있다.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빙그레 제품의 탄생 배경과 발전과정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겨있다.

사진=빙그레
사진=빙그레

바나나우유 아니고요...바나나맛우유입니다

바나나맛 우유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대도시로 이주한 국민들이 고향을 떠올릴 수 있도록 넉넉한 항아리 모양으로 디자인됐다고 한다.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특유의 독특한 용기 모양은 공식적으로 단지라고 불리며 이외에도 항아리, 수류탄, 뚱땡이, 뚱바 등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좌우로 부푼 350ml 캔 음료를 뚱캔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바나나는 수입 제한 품목이라 귀했기에 온 국민에게 바나나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영양 간식으로 바나나맛우유를 기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바나나가 수입 제한 품목에서 해제되고 다양한 종류의 가공유가 출시되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빙그레는 전통을 고수해 원형 패키지 디자인을 유지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바나나맛우유의 장기 흥행으로 이어졌다. 바나나맛우유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디자인 기조와 맛의 원점을 잃지 않은 효자 상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바나나맛우유는 할인 행사도 잘 안하지만 차원이 다른 판매량을 보여준다. 바나나맛우유는 다른 우유들과는 달리 편의점에서 발주 시 유일하게 무조건 4배수 단위로만 발주를 받는 우유임에도 유통기한 경과로 인한 폐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사진=빙그레
사진=빙그레

콜라보 열풍의 주인공, 메로나

1980년대 초반은 본격적으로 빙과류 냉장고가 전국 각지에 공급되고 일본에서 팔던 ‘분말형 샤베트’가 한국에서도 카피되어 팔리기 시작한 시기다. 멜론은 당시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다.

사실 1992년 메로나 출시에 앞서 해태의 캔디아이스바 멜론 맛이 인기를 끌었다. 메로나와 달리 동네 빵집 아이스캔디와 거의 차이가 없는 딱딱한 식감인 ‘소르베' 제품이었다. 당시에는 갓 데뷔한 신인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캔디아이스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캔디아이스는 1년 만에 후발주자였던 빙그레 메로나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캔디아이스와 메로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식감이었다. 캔디아이스가 말 그대로 캔디 같은 딱딱한 식감인 데 비해, 메로나는 유제품 빙과류에서 볼 수 있는 물렁물렁하고 쫀득한 식감이며 멜론 향이 더 강했다.

특히 1990년대 당시는 지금처럼 임플란트가 보편화되지도 않았기에 이가 안 좋은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제품이었다.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특유의 멜론향 식감으로 30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메로나는 오랜 시간 소비자들의 추억 속에 함께 자리하며, 우리의 일상에서 달콤한 유혹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메로나라는 상품은 이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도 출시됐다. 메로나는 메로나룩, 메로나네일 등 독특한 청록빛 컬러 아이템으로 상징되는 메로나 패션이나 메로나떡, 메로나라떼, 메로나칵테일과 같은 이색 요리 레시피로도 활용되는 등 전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아이스크림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다.

메로나는 해외 수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각 나라의 선호 과일에 맞춰 판매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메로나는 특히 북미지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현지 시장의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 빙과업계 최초로 미국 현지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다.

사진=빙그레
사진=빙그레

요플레가 환영받지 못했다고?

떠먹는 요거트의 시작, 요플레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83년의 일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간식이지만 당시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요구르트란 오직 작은 병 안에 담긴 새콤한 입가심 음료뿐이었다.

이때 빙그레는 더욱 맛있고 건강한 죽처럼 떠먹는 요구르트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빙그레는 요플레의 출시를 위해 차곡차곡 단계를 쌓아갔다. 먼저 1981년 프랑스의 '소디마'라는 낙농 조합과 기술협약을 맺었다.

소디마는 프랑스의 6개 지역의 낙농 조합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다. 요플레의 로고에 보이는 꽃잎과 줄기가 바로 각각의 낙농 조합을 뜻한다. 처음 선보이는 유제품이니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디마에서 기술을 배워 왔다.

놀라운 건 요플레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요플레' 하면 어떤 제품인지를 알지만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요구르트'라기에는 끈적하고, 또 '우유'라고 생각하기에는 맛이 시큼했다. 당시로선 낯선 제품인 요플레의 가격은 어지간한 간식들보다 비쌌기에 누구도 선뜻 요플레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요플레를 판매하기 전에, 떠먹는 요거트를 대중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방방곡곡 아파트를 돌고, 시음회를 열었다. 몇 년 후, 운 좋게도 88년 서울올림픽이 시작되고 나서 유럽에서 온 외국 선수들이 '요플레'를 찾기 시작했다.

요플레가 대중들을 설득하는 데 걸린 6년이란 기간 끝에 요플레가 어떤 간식인지 몸소 보여줄 해외 선수들이 들어온 것이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였기에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익숙한 간식인 '요플레'를 먹기 시작했다.

"요플레가 진짜 유럽풍 정통 요구르트구나..." 일반적인 요구르트에 비해 유산균이 많고, 또 맛도 좋아 그 뒤로는 상황이 바뀌었다. 또 실제 과육이 들어있어서 당시로선 훨씬 비싼 과일값을 생각하면 요플레가 가성비가 있는 맛있는 선택이었다.

사진=빙그레
사진=빙그레

투개월아니고 투게더입니다

투게더는 국내 최초 원유로 만든 정통 아이스크림으로, 빙과 제품이 주류를 이뤘던 1970년대에 새로운 디저트 트렌드를 선도했다.

아이스크림에 국산 우유를 2배 농축하여 신선하고 풍부한 맛을 제공한 덕분에 오랜 기간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의 대명사이자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제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투게더는 1974년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황금색 패키지와 클래식 감성의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최초의 품질과 맛이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이 한결같다는 것을 상징한다.

1980년대 이후 투게더 가격은 3천원으로 당시 기준 꽤나 비싼 가격이었다. 1980년대 중반 3천원이면 짜장면의 약 4배(1987년 기준 짜장면 한 그릇이 700원)였다. 3천원 가격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유지됐으나 1998년 IMF 직후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를 때 덩달아 올랐다. 그래도 20여년 동안 다른 제품에 비해서 많이 오르진 않은 편이다.

‘빙그레’ 정신

빙그레 제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맛과 디자인은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빙그레’라는 사명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하셨던 민족의 웃음 ‘빙그레’ 정신이 담겨있다.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음을 빙그레가 보여주고 있다. 빙그레는 지난 8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92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을 개최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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