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월 19일 당포함 격침 사건
[역사속 오늘리뷰] 1월 19일 당포함 격침 사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1.19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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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오전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당포함 순직장병 42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분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09년 1월 19일 오전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당포함 순직장병 42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분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67년 1월 19일은 우리 해군 함대 제1전단 묵호경비부 소속 호위초계함인 당포함이 동해에서 북한 육군 해안포의 포격을 받아 격침한 날이다. 문제의 발단은 북방한계선이었다.

이날 어선들은 명태를 잡으러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 그러자 북한 경비정 2척이 어선들을 납북하려고 하자 당포함은 북쪽으로 전진했고, 북한 경비정들은 퇴각했다.

그런데 북한 해안가 포진지에서 기습적으로 포격이 시작됐다. 이에 당포함은 순식간에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더욱이 당포함은 화력 면에서 북한 해안가 포격에 비해 약했다.

뒤이어 다른 해군 함정들이 달려오면서 북한군의 포격이 멈춰졌지만 당포함은 기동 불능 상태가 됐고, 함장은 퇴함명령을 내렸으며 결국 당포함은 침몰하고 말았다.

11명 사망

당포함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이 79명이지만 51명만 구조됐고, 11명은 사망했고, 11명은 중화상을 입었으며 28명은 시신조차 차짖 못했다.

비록 우리가 NLL을 먼저 넘었다고 해도 북한 측이 경고 사격 없이 포격 사격부터 했다는 점에서 잘못이 크다.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이나 대청해전 등에서 모두 북한 측이 먼저 넘어왔지만 우리 군은 사건 경고를 보냈다.

당포함 침몰 사고는 어민들의 자살로도 이어졌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어로 활동을 위해 NLL을 넘어서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결국 정부는 어로보호 업무를 해군에서 농림부와 내무부에 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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