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바이킹
[역사속 경제리뷰] 바이킹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1.19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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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바이킹은 8세기~11세기 배를 타고 무역이나 약탈로 살아가던 노르드인을 말한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드 반도에 살던 노르드인들이 8세기말부터 해양을 통해 전 유럽을 장악해 나가면서 바이킹도 유명세를 떨쳤다.

다만 유럽에서도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면서 바이킹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럼녀서 노르망디 공국과 같인 현지에 정착해 완벽히 동화된 바이킹들도 있었다.

바이킹하면 해적으로 야만스런 이미지가 떠오르기 쉽지만 실제로는 탁월한 항해사이면서 탐험가이면서 상인이었다.

바이킹은 자유민으로 매년 의회를 소집해 법을 제정하거나 분쟁을 해결했다. 오늘날 ‘의회’ 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 역시 바이킹에서 유래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바이킹의 항해술은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열쇠를 했다. 이와 더불어 북유럽 신화가 오늘날에도 유럽의 많은 문화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인구의 증가 등

바이킹이 8세기부터 유럽 전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의 멸망이다. 그것을 통해 유럽이 중앙집권국가가 되지 않으면서 바이킹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또 다른 이유는 인구의 증가이다. 8세기 유럽은 농업기술이 발달했다. 게0다가 기후는 따뜻해졌다. 그것은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다. 북유럽 역시 인구는 증가했다. 문제는 기후가 추웠기 때문에 농업의 생산량은 성장하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농사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반면 유럽은 고대로마가 붕괴되면서 점차 부유해졌다. 그것은 그 땅에서 생산한 생산품을 고대 로마의 수도 로마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땅에서 소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슬람과 소아시아를 통해 동방과의 무역이 이뤄지면서 막대한 부를 쌓아갈 수 있었다.

반면 북유럽은 동북아와의 무역 혜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가난한 지역이 됐다. 즉, 다른 유럽은 부자 지역인 반면 북유럽은 가난한 지역이 되면서 부의 불균형 현상이 발생했다.

반면 봉건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럽 각국은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자 바이킹이 쉽게 격파를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먼바다를 나아갈 수 있게 되면서 그에 따라 바이킹의 유럽 진출이 가능해졌다.

쇠퇴한 이유

바이킹은 8세기부터 전성기를 보였지만 10세기 말부터 조금씩 빈도가 줄어들더니 11세기 중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유는 서유럽이 바이킹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유럽 영주들은 곳곳에 바이킹들의 기습을 막을 초소와 기지들을 세웠다. 또한 중무장한 중세 유럽 기사들의 등장 역시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했다. 기존에는 주로 보병을 위주로 방어를 했다면 중세유럽에 접어들면서 중무장한 중세 유럽 기사들이 방어를 하면서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했다.

또한 농노제의 확산은 바이킹에게는 치명타가 됐다. 바이킹은 점령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팔아 넘기는 노예 무역을 해왔는데 농노제가 중세시대에 정착을 하면서 더 이상 노예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자기 땅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농노들이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데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말도 안 듣는 새 노예들을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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