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국제결혼
[오늘 통한 과거리뷰] 국제결혼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1.31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최근 베트남 국제결혼 업체가 외국인 신부 교육 지침 게시물이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글에는 베트남 신부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하지 마라”, “생활비를 아껴 써라”,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마라”, “한국에 있는 베트남 사람을 멀리 하라”, “한국에 가면 남편만 믿고 남편이 최고” 등의 교육 지침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아울러 업체는 공지 글을 통해 베트남 여성의 장단점을 소개했다. 장점으로는 “긴 생머리에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이 많다”, “의외로 피부 하얀 여성이 많다” 등이었다.

단점으로 “기가 세고 순종적인 여성이 드물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뒤통수를 친다”, “결혼하면 남편이 쥐어 잡혀 산다” 등이었다.

이에 누리꾼들은 성차별적이고 여성 비하적 내용을 담았다고 비판을 가했다. 아울러 국제결혼 자체에 대해 ‘매매혼’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

우리나라 최초 국제결혼은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을 꼽는다. 다만 우니라나는 단일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결혼에 대해 별다른 부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국제결혼이 부각된 것은 19세기말 개항을 거치면서이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내선일체를 내세워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을 조선총독부에서 장려를 했다.

일본인 남성이 한반도로 건너오면서 조선인 여성과 결혼을 하거나 조선인 남성의 경우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현지 여성과 결혼을 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해방 이후 국제결혼은 있어왔지만 주로 한국인 여성과 주한미군 사이에서 이뤄졌다. 그러던 국제결혼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농촌 인구 유지를 위해 농촌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에 결혼이 급증하면서이다.

산업화 이후 농어촌은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나면서 농어촌 인구는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농촌에는 여전히 결혼을 하지 못한 남성이 존재했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 국가에서 농촌을 살리기 위해 도시에서 일하는 여성과 농촌 총각 사이에 결혼 주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 여성이 농촌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피를 하면서 점차 농촌 총각은 사회문제가 됐다.

2000년대 들어와서

이에 2000년대 들어오면서 농촌 총각과 동남아 여성들의 국제결혼이 점차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국제결혼 업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농촌총각을 넘어 도시의 중산층 남성들 사이에서도 국제결혼이 이뤄지면서 국제결혼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제결혼의 폐해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국제결혼에 대해 신중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제결혼 숫자가 줄어들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국제항로가 봉쇄되면서 국제결혼이 급감했다가 최근 엔데믹이 되면서 국제결혼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