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3월 6일 겨울전쟁 종전 협정 체결
[역사속 오늘리뷰] 3월 6일 겨울전쟁 종전 협정 체결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3.0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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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전쟁 한 장면.
영화 겨울전쟁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0년 3월 6일은 겨울전쟁 종전 협정을 체결한 날이다. 겨울전쟁은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1939년 11월 30일 발발해서 1940년 3월 13일 종전됐다.

강대국 소련이 약소국 핀란드를 얕잡고 일으킨 전쟁이지만 그야말로 패배를 하고 끝났다. 겨울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겨울전쟁이라고 불렀는데 영미권에서는 소련을 핀란드가 견제했다는 의미로 ‘겨울전쟁’이라고 불렀다.

스웨덴 왕국 영토

핀란드는 1150년 이후 스웨덴 왕국 영토가 됐고, 1809년 이후에 러시아 제국에 속하게 됐다. 1917년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 들어갔다.

소련은 계속해서 핀란드에 욕심을 냈다. 특히 1930년대 초반 소련의 공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핀란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에 소련은 핀란드에 대대적인 영토 할양 및 조차를 요구했다. 하지만 쿼외스티 칼리오 핀란드 대통령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위장자작극

1939년 11월 26일 소련은 핀란드를 침략할 구실을 위해 자신들의 국경 수비 초소가 핀란드군에게 포격을 당한 것처럼 위장 자작극을 벌였다. 그리고 나흘 후 대대적인 핀란드 침공을 했다.

당시 핀란드는 무기도 소련에 비해 뒤졌고, 군대 숫자도 많이 부족했다. 핀란드군 1명 당 3명의 소련군을 상대해야 했다. 게다가 연료 비축량은 최대 60일분에 불과했고, 장비는 노후화됐다.

소련군은 54만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핀란드 인구가 370만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대적인 침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차는 2400:9였다. 항공기는 500:80이었다.

핀란드군은 방어전에 돌입했다. 소련군은 핀란드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핀란드가 삼림이 풍부한 지역이기 때문에 진격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핀란드 내부 공산주의자들이 소련군에 호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련군의 최대 적은 ‘겨울’이다. 소련도 겨울이 상당히 춥지만 핀란드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게다가 폭설로 인해 소련군 전차는 제대로 진격하지 못한 상태가 됐다. 이에 핀란드군은 술에 붙을 붙여 전차 안에 던져 버리는 식으로 공격했다.

당황한 스탈린

스탈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월 6일 소련과 핀란드가 협정을 맺었다. 핀란드는 영토 11%, 산업능력 10%를 소련에게 넘겨주는 조건이었지만 소련으로 핀란드가 흡수되는 것은 막았다.

영토와 재산을 빼앗기고 큰 피해를 입은 핀란드는 1941년부터 ‘계속전쟁’을 벌여 잃었던 영토를 일시적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1944년에 전세가 뒤집히자 독일을 버리고 소련에 붙어서 다시 뱉어냈다.

소련군은 겨울전쟁으로 얻은 교훈으로 독소전쟁을 이러냈다. 소련군은 장비와 의복 그리고 전술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특히 독일군와 모스크바 공방전을 치를 때 소련이 겨울전쟁에서 얻은 교훈으로 전쟁을 치렀고, 독일군을 물리쳤다.

그만큼 겨울전쟁은 강대국인 소련이 약소국 핀란드를 얕보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손해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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