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공중화장실
[역사속 경제리뷰] 공중화장실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3.06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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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공중화장실은 시민들이 이용하도록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법인이나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을 말한다.

공중화장실은 역사가 오래됐다. 그 이유는 사람은 먹으면 배설을 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이 필요했다.

아울러 농경국가에서 비료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이 필수적이었다. 공중화장실을 통해 비료를 공급할 수 있었다.

신석기 시대부터

공중화장실은 신석기 시대 즉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신석기시대 마을 등을 살펴보면 공중화장실의 흔적이 보인다.

현재는 화학비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신석기시대에는 비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배설물 즉 인분을 비료로 만들었다. 따라서 공중화장실은 반드시 필요했다.

고대 로마에는 좌변기가 등장했다. 당시 수도를 끌어다 수세식으로 사용했다. 당시 수세식 공중화장실은 주로 노예들이 사용했고, 귀족들은 따로 사용했다. 다만 남녀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했다.

중세유럽에서도 비슷했다. 그러다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인 1851년 런던에서 1페니를 주면 이용할 수 있는 유료 공중화장실이 등장했다.

유료 공중화장실이 등장한 이유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공중화장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그에 따라 유료 공중화장실이 등장한 것이다. 1866년 지하 하수도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공중화장실이 지하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공중화장실이 존재했다. 고종 당시 중건한 경복궁에는 대형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굴됐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주택별로 화장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처음 생겨날 때에도 개인집에 화장실이 없고, 바깥에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대형 철제 소변기가 설치됐다. 다만 물낭비가 심했고, 냄새는 지독했고, 습도가 불쾌할 정도였다. 하지만 터미널 등을 비롯해 학교 등에 대형 철제 소변기가 설치됐다.

이와 더불어 1970년대에는 학교, 관공서, 군대, 고속도로 휴게소에 변기 대신 소변통이 비치됐다. 당시 녹십자 측이 소변을 수거해갔는데 소변에서 ‘유로키나제’라는 약품을 추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외국에 수출하면서 외화 획득에 기여했다.

전세계 최고 화장실로 된 사연

해외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이 전세계 최고라는 찬사이다. 어떤 나라를 다녀봐도 우리나라처럼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 등을 겪으면서이다.

특히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역할이 상당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화장실 에티켓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행정안전부와 함께 ‘아름다운 화장실 대항 공모전’을 해마다 해오고 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 확산을 위해 1999년부터 해마다 시생하고 있다.

또한 ‘휴지통 없애기’ ‘휴지 절약하기’ ‘깨끗이 사용하기’ ‘안심 화장실’ ‘탄소중립실천운동’ 등 공중화장실 관련 캠페인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 화장실이 전세계적으로 최고인 것 중 하나가 화장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저귀 교환대이다.

게다가 어린이용 화장실 혹은 어린이용 변기가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여기에 일부 공중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돼 있으며, 코로나19 혹은 신종플루를 겪으면서 손소독제를 구비하고, 에어타올 혹은 일회용 종이타올이 설치됐고, 일회용품 자판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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