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
[역사속 경제리뷰]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3.1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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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마 한 장면.
영화 마마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프레시 매니저는 hy(구 한국야쿠르트) 방문 판매원을 말한다. 흔히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부른다. 프레시 매니저는 우리에게 친근한 사람이며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프레시 매니저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베이지색 옷과 챙모자 그리고 냉장고가 있는 전동카트는 해외언론에서도 극찬할 정도가 됐다.

한국에 상륙한 야쿠르트

1971년 故 윤덕병 창업주는 서울 청계천에 ‘삼호유업’을 열었다. 윤덕병 창업주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실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1963년 중령으로 예편하면서 축산진흥정책에 주목을 했다. 그러면서 우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소비량이 적어 우유가 남아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 이에 일본에서 경험했던 유산균 발효유를 떠올렸다.

이에 건국대 축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촌형 故 윤쾌병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1971년 경기도 안양에 국내 최초 발효유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야쿠르트 제조·판매에 나섰다.

야쿠르트 아줌마 등장

다만 야쿠르트라는 상품이 국민에게 생소했다. 이에 소비자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주부들을 방문 판매 사원으로 채용했다. 가방에 휴대용 냉장 시설을 갖추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부들이 직접 야쿠르트를 판매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47명으로 시작했다. 여성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선망의 대상이 됐다.

개인사업자이면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근무시간이 짧으면서 복지혜택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혼여성만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엄마나 옆집 아줌마와 같은 친근한 이미지의 주부들이 야쿠르트를 판매하면서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한국야쿠르트 회사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를 부르는 명칭이 ‘여사님’이었다. 그러다가 프레시 매니저로 바뀌었다.

못 가는 곳이 없다

프레시 매니저는 못 가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공인된 정보수집원’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국가정보원보다는 오히려 야쿠르트 아줌마의 정보력이 더 정확하고 빠르다는 평가도 나왔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보안이 삼엄했던 사무실도 마음대로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4년 철도 총파업 당시 파업자들이 명동성당을 점거했을 때에도 야쿠르트 아줌마는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또한 1994년부터 시작된 ‘홀몸노인 돌봄활동’은 어느덧 3만명을 돌보는 대형사업이 되어, 복지 사각지대 해소의 대표사례로 손꼽힌다.

전동카트 도입

야쿠르트 아줌마에 변화를 보인 것은 2007년 전동카트 도입이면서이다. 과거에는 휴대용 경량 아이스박스 같은 손가방으로 배달을 했지만 전동카트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2014년 세계 최초로 사람이 탑승 가능한 냉장고형 전동카트 코코(Cold&Cool)가 출시되면서 이듬해 전면 도입했다.

2016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새 요구르트 마차가 파문을 일으키다(New Yogurtmobiles in South Korea Cause a Stir)’ 제목으로 기사화됐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프레시 매니저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최첨단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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