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매독
[역사속 경제리뷰] 매독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3.13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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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매독은 대표적인 성병의 일종이다. 전염력이 강하고 위험한 성병이다. 매독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절대왕조의 시대를 지나면서 전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청교도 등 금욕주의가 나오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매독은 피부 궤양이 매화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었다. 매독의 영문명은 syphilis이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의사인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에 쓴 ‘시필리스 혹은 프랑스 병’에서 오비드에 등장하는 목동 시필리스의 이름을 따왔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에서

매독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유럽에서 유입된 병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후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매독이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독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것은 봉건주의시대에서 절대왕조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이다.

1494년부터 1498년까지 5년간 발발한 ‘제1차 이탈리아 전쟁’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왕인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했고, 교황청, 나폴리, 베네치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들이 참가한 첫 번째 대규모 전쟁이었다.

당시 전쟁은 승리를 하게 되면 점령지를 약탈을 한다. 그 약탈에는 점령지 여성에 대한 강간도 포함이 됐다. 매독 보균자 일부 프랑스군이 결국 매독을 전 유럽에 퍼져 나가게 한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병’이라고 불렀다.

16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커졌고,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매독이 퍼졌다. 이에 유럽에서는 매독을 자국 침략국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됐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독립전쟁을 벌일 당시 매독을 스페인병으로 불렀다.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폴란드에서는 독일병 등으로 불렀다.

더욱이 매독은 대항해 시대 교역로를 타고 동양으로도 번져 나갔다. 1498년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이후 인도로 퍼졌고, 16세기 초반에는 중국, 일본까지 퍼졌다. 우리나라에도 매독이 들어왔지만 워낙 교통로가 불편했고 정조관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매독의 공포는 결국

매독에 대한 공포는 결국 종교를 더욱 공고화하게 만들었다. 금욕주의 종교가 탄생하게 되면서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이 발생했다. 유럽 각지에서도 금욕주의 종교가 큰 밑바탕에 깔리게 했다.

성병의 전파는 ‘성관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의 질병’ 혹은 ‘인간이 문란하기 때문에’라는 식의 논리를 통해 금욕주의를 설파하고, 인간 역시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점차 금욕주의 생활을 하게 된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신보수주의가 힘을 얻게 된 것은 AIDS가 창궐을 하자 ‘히피 문화’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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