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3월 14일 조면기 발명
[역사속 오늘리뷰] 3월 14일 조면기 발명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3.1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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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794년 3월 14일은 조면기가 발명된 날이다.

그 이전까지 사람이 직접 밀대로 씨앗을 빼애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일라이 휘트니의 조면기를 사용하면서 작업 효율이 수백배 가까이 올랐다.

이로 인해 조면기 한 대로 400명의 작업량을 해치우게 됐고, 점차 개선되면서 1천명의 작업량을 채우게 됐다.

노예 동정해서 만든 조면기

알라이 휘트니는 북부에서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었다. 다만 취업이 여의치 않으면서 남부농장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됐다. 흑인 노예들이 일일이 목화씨를 빼내면서 장기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동정하게 됐다.

여기에 남부 면화산업이 점차 쇠락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농장주의 투자를 받아 조면기 발명을 했다.

조면기 한 대가 50명의 흑은 노예를 대신할 수 있을만큼 혁신적이어서 남부의 목화산업의 수익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흑인노예들의 비인간적인 노동을 줄여주기 위해 조면기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흑인노예의 수요를 더욱 폭증시키게 됐다. 기관총을 발명한 맥심과 함께 발명자의 선한 의도와 반대로 역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예로 흔히 들어지곤 한다.

더욱이 농장주들은 특허권을 무효화하고 멋대로 기계를 표절하자 휘트니는 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이후 휘트니는 총기를 만들어 정부에 납품하는 사업을 했는데 교환가능 부품시스템을 적용했다. 그 이전까지 총은 총기업자들이 하나씩 만드는 수공업품에 가까워 같은 총기라도 부품이 호환되지 않았다.

하지만 휘트니는 총기 부품을 표준화시켜 서로 갈아 끼우게 했고, 이것을 휘트니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이런 휘트니 시스템과 포드의 컨베이터 시스템이 합쳐지면서 미국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업대국이 됐다.

남북전쟁의 단초 제공

조면기의 발명은 미국 역사를 바꿔 버렸다. 그 이전까지 목화 재배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수익을 낼 수 없었다. 목화를 재배하는 남부지방에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그것은 비용의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에 노예제 철폐를 주장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노예제를 철폐하고 고용과 피고용인 관계가 된다면 그만큼 저렴하게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면기가 발명되면서 노동력이 절감하게 됐다. 오로지 목화를 따는 인력만 필요하게 된 것이다. 목화를 따는 인력만 필요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노예제가 유지되는 것이 목화농장 주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노예제 유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73년 6만 kg에 불과했던 목화 생산량이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0년 8260만 kg으로 늘어났다. 생산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노동력도 많이 필요했고, 이에 흑인 노예는 65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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