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지붕·거북이 초석 '영모정', 건축사적 가치 재조명
- 신정일 사학자, “진안의 자산은 섬진강 발원지... 섬진강 박물관 필요”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진안고원길 이어걷기를 하는 ‘바람 이는 고원길에 서다(바이고서)’ 회원들과 (사)우리땅걷기 회원 150여 명은 지난 11일 전북 진안군의 섬진강 발원지 일대에서 '섬진강 정자 기행'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우리땅걷기 이사장인 신정일 사학자의 해설과 함께 백운면 영모정을 출발해 약 10km를 걷는 도보 여행으로 기획됐다. 단순한 도보를 넘어 진안의 역사와 정자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수치유 관광 프로그램의 핵심 콘텐츠로서 의미를 더했다.
'치유 도시 진안', 섬진강 정자 기행으로 날개 달다
‘섬진강 정자 기행’을 추진한 전춘성 진안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진안고원길 바이고서 이어걷기에 매년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진안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도 좋아 건강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진안에 와서 치유하고 회복하며 힐링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수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그 일환으로 신정일 선생과 함께 진안만이 가지고 있는 ‘섬진강 정자 기행’을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춘성 진안군수는 지난 9월 11일 서울 국회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물문화 포럼에서 ‘진안 수치유 관광’ 비전 선포를 통해 “청정한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치유 관광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고, 수치유 법제화를 건의해 대한민국 대표 치유도시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오는 2026~2027년을 ‘진안 방문의 해’로 선포한 바 있다.
섬진강 발원지, 천혜의 문화 자산... 역사 속에 스며든 진안의 독특한 정자 문화
이번 ‘섬진강 정자 기행’의 길잡이가 된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해 전남 광양만까지 223km를 흐르는 강으로 ‘맑은 강’이라는 이름처럼 깨끗한 물줄기로 알려져 있다.



신정일 사학자는 섬진강을 "남한에서는 4번째로 긴 강이자 깨끗한 강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발원지인 데미샘이 지난 2016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섬진강의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대표하는 명소로 평가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은 고려 우왕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蟾) 떼가 울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전에는 두치강이라 부르던 것을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운면에서 시작된 ‘섬진강 정자 기행’의 첫 장소는 영모정(永慕亭)이다. 영모정은 거창 신씨 신의련의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임진왜란 이후 건립되었다.
특히, 이 정자는 우리나라 정자 대부분이 기와지붕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작은 점판암 판돌인 너와(널빤지) 지붕을 이었으며, 거북이 모양의 초석을 사용하는 등 건축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누각으로 재조명되었다.
영모정의 학술적,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아 국가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하기 위해 지난해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국가가 아닌 개인이 세운 모운정(慕雲亭)은 백운면장과 매사냥으로 전북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전영태옹이 1977년 사재를 털어 건립했다.
신정일 사학자는 이곳에서 사방이 트이고 텅 비어 있는 '정자의 개념'을 고려 문장가 이규보가 처음 정립했음을 설명하며, 참가자들과 함께 옛 선조들이 정자에서 즐겼던 놀이 문화를 재현하기도 했다.
모운정에서 쌍계정으로 가는 길은 추수를 앞둔 황금 들녘이 반기듯 맞이한다. 백운면 덕운교에 들어서니 빨간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150년의 역사를 가진 백운면 물레방아이다.
바로 아래 흐르는 천의 물을 동력으로 이용하여 물레를 돌리는 전통적인 물레방아로 전라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수로가 막혀 가동하지는 않는다.



커다란 암벽 동굴을 지붕 삼아 자리 잡은 쌍계정(雙溪亭)은 백운동 마을에서 발원한 백운천과 솥내마을에서 흘러온 내가 만나는 지점에 있어 ‘쌍계’로 불린다.
정자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마치 쌍계사 입구의 쌍계석문처럼 이곳에도 바위가 있다고 하여 고운 최치원이 쓴 ‘쌍계석문’의 4자를 모방하여 새긴 석문(石門)이라는 한자가 정자 뒤의 암벽에 크게 새겨져 있으며, 바위틈 사이로 흘러 샘물을 형성하고 있다. 쌍계정을 찾은 옛 선비들은 거대한 돌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놓기도 했다.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은 1924년에 지어진 근대식 한옥 건물이다. 풍수에 조예가 깊었던 전영표가 마령면 최고의 명당에 지은 집으로, ‘전영표 가옥’으로도 불린다.
안채는 당시 농촌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주인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이용하였고 2층은 누에를 키우는 잠실로 사용하였다. 2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은 일본식 절충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우리나라 근대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940년대에 건립된 쌍벽루(雙碧樓)는 '산이 푸르고 계곡물이 푸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정일 선생은 매천 황현의 시를 읊으며 섬진강변 절경의 위용을 참가자들에게 전달했다. 쌍벽루에서 도로를 따라가면 큰 바위에 새겨진 ‘삼계석문 암각서’를 발견할 수 있다. 삼계석문 암각서는 최치원의 글씨를 탁본하여 새긴 것이다.




‘섬진강 정자 기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국가문화유산인 보물로 지정된 마령면의 수선루(睡仙樓)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암굴(바위 동굴)에 지어진 정자라는 가치 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선루는 ‘신선이 앉아서 졸고 있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태극 문양이 그려진 1층을 지나 2층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히며 굽이치는 섬진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정일 사학자는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며, 주정 문화를 꽃피웠는데, 특히 연안송씨(延安宋氏) 가문은 송진유, 명유, 철유, 서유 사형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여기에서 바둑도 두고, 시도 읊으며, 신선같이 살기를 기원하는 효를 기리는 정자”라며 수선루의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끼를 타고 내린 샘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아래에도 이끼를 타고 또 하나의 샘물이 형성되어 있어 쌍 샘물이 있는 셈이다. 샘물 위의 암벽에는 ‘연안송씨 수선루’라는 글씨가 암각화 되어 있다. 마루에서 고개를 들어 대들보 위쪽을 바라보니 편액 뒤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흰 수염을 가진 선비들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다. 이들이 바로 수선루를 처음 건립한 사형제의 모습이다.
"섬진강 박물관·데미샘~광양 걷기 프로그램 개발해야"
신정일 사학자는 "진안의 중요한 자산은 섬진강 발원지라는 점"이라며 "이 깨끗한 강줄기를 따라 섬진강 박물관을 만들고, 데미샘부터 광양까지 걷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명상과 자연 체험을 결합한 특별한 치유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진안의 미래를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기행을 통해 진안의 정자 문화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역사, 문화, 자연, 치유가 어우러진 지역의 소중한 자산임을 깨달았다는 소감을 피력하며, 우리나라의 정자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진안군 관계자는 “섬진강 정자 기행은 진안의 문화자산과 생태환경을 결합한 대표적인 수치유 관광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