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아리산 탐방기 ①] 2,216m 구름 위를 달리는 붉은 열차, 거목의 넋을 위로하다
[대만 아리산 탐방기 ①] 2,216m 구름 위를 달리는 붉은 열차, 거목의 넋을 위로하다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6.03.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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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우족 부락의 환대와 고산 우롱차의 향기
- 아리산 숲에 새겨진 수탈의 상처와 치유의 기록
- 안개 속의 현대적 안식처, 호텔 인디고 아리산
아리산 삼림열차를 타고 정상에서 영산 아리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해발 1,300m 고지에 다다르자 층층이 깎아지른 차밭 사이로 신비로운 운해가 발아래 깔린다. 이곳은 아리산의 진짜 주인이라 불리는 원주민 ‘쩌우족(鄒族)’의 터전, 유유파스(YuYuPas) 문화부락이다.

이번 여정의 길잡이를 맡은 파명곤 이사는 “아리산 탐방에 앞서 대만의 영산 아리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품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이들의 서사부터 읽어야 한다”라며 쩌우족 문화부락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축복의 언어 ‘유유파스’가 품은 전사의 기개

부락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유유파스’라는 정겨운 울림이 여행객을 맞는다. 이는 쩌우족 언어로 ‘매우 풍요롭다’ 혹은 ‘행복과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을 담은 축복의 인사다. 안개 숲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억새 지붕 가옥들은 과거 사냥을 생업으로 삼던 전사들의 기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발 1300m 고지에 위치한 '아리산 유유파스 문화부락'의 차밭과 공연장이 보인다. /사진=조용식 기자
대만 원주민의 대다수가 여힌 중심의 모계 사회이지만, 쩌우족은 용맹한 전사의 혈통을 이어오고 있는 철저한 부계 중심의 사회이다./사진=조용식 기자
부계 중심의 사회를 상징하는 황금 남근석.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과거 이곳에서 사냥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추장 ‘아발리’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들은 산의 제왕으로 군림해 왔다. 특히 대다수 대만 원주민이 여인 중심의 모계 사회를 따르는 것과 달리, 쩌우족은 철저한 부계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며 용맹한 전사의 혈통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의 번영과 다산을 상징하는 거대한 황금빛 남근상은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과 종족의 영속성을 바라는 이들의 원시적 신앙을 상징하듯 당당하게 우뚝 서 있다.

원구 중앙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전사들이 나타난다. 화려한 깃털 장식과 쩌우족만의 독특한 피혁 복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냥에 능했던 이들은 양과 사슴 등의 가죽을 직접 가공해 옷을 해 입었으며, 이는 쩌우족만의 독보적인 복식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의 공연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계급 사회의 엄격한 질서와 화합을 보여준다. 마을의 정점인 추장부터 무당, 장로, 그리고 용사들로 이어지는 뚜렷한 위계 속에서 그들은 종족의 안녕을 노래한다. 공연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우렁찬 기합 소리는 안개 숲의 고요를 깨우며 쩌우족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을 지켜내고 있다는 당당한 선언처럼 들린다.

108번뇌 잊게 하는 안개 속 우롱차 한 잔

공연의 열기가 식을 즈음 차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통 가옥으로 자리를 옮긴다. 쩌우족 아가씨가 정성스레 내어주는 아리산 고산 우롱차의 향기가 코끝에 머문다. 이곳의 차는 성급하게 끊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에 잎을 천천히 우려 그 깊이를 느끼게 한다.

아리산의 진짜 주인이라고 불리는 쩌우족의 공연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쩌우족의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식 기자
고산 지대에서 재배한 우롱차를 제공하는 쩌우족 아가씨.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저우족 문화부락의 전경. /사진=조용식 기자

잦은 안개와 큰 일교차라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란 찻잎은 그만큼 깊고 진한 풍미를 낸다. 차의 향을 먼저 맡는 ‘문향배’에서 피어오르는 난꽃 향은 번잡한 세상의 108번뇌를 잠시 잊게 할 만큼 청아하다.

“참새는 작아도 모든 장기를 다 갖췄다”는 파명곤 이사의 비유처럼 유유파스 부락은 작지만 대만의 역사와 민속, 대자연의 축복이 압축된 보물섬 같은 공간이다. 쩌우족의 따뜻한 환대와 향기로운 차 한 잔으로 시작된 이번 여정은 아픈 수탈의 역사를 넘어선, 대만 원주민들의 당당한 삶의 기록으로 기억될 것이다.

세계 3대 고산 철도, 수탈의 궤도에서 낭만의 선로로

대만 자이현의 아침은 서늘한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해발 2,000m가 넘는 영산(靈山), 아리산(阿里山)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1621년 네덜란드인의 상륙부터 시작된 대만의 굴곡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엄한 시간 여행의 서막이다.

아리산 삼림열차를 타고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펀치후 역에서 아리산역으로 가기 위해 표를 끊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역 티켓. /사진=조용식 기자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아리산의 울창한 히노티를 수탈할 당시 목재를 운반했던 18호 증기기관차.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탐방의 핵심은 단연 삼림 열차다. 펀치후(Fenchihu) 역에서 아리산 역으로 향하는 티켓을 손에 쥐고 붉은색 열차에 몸을 실으면 100여 년 전 이 가파른 산등성이에 철길을 놓았던 이들의 숨가쁜 기록이 차창 밖 풍경과 교차한다.

본래 이 철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아리산의 울창한 히노키(편백나무)를 수탈해 본토로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파명곤 이사는 "일본인들이 신사 기둥 등으로 쓰기 위해 1,000년 이상 된 거목들을 무분별하게 잘라갔다"며 수탈의 역사를 설명했다.

당시 거대한 목재를 운반하던 18호 증기기관차는 이제 박물관에 멈춰 서서 지난날을 증언하고 있지만, 그 궤도를 이어받은 붉은 열차는 이제 전 세계 여행객을 싣고 구름 위를 달리는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베어진 거목들의 저주인가... '수령탑'에 깃든 전설

열차에서 내려 안개 자욱한 숲으로 들어서면 밑동만 남은 거대한 나무 그루터기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바로 거목군 산책로(巨木群棧道)이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수탈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은 수십 그루의 거대 홍백나무와 편백나무(히노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숲길 곳곳에는 거목을 자르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들이 서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벌채 현장을 짐작케 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펀치후 역의 선로를 지나고 있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식 기자
붉은 색의 아리산 삼림열차.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삼림열차를 탑승한 관광객들이 정상에서 잠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영상 12도를 알리고 있는 아리산역의 풍경. /사진=조용식 기자

이곳에는 베어진 나무들의 넋과 관련된 기이한 전설이 내려온다. "수천 년 된 히노키를 무분별하게 베어내자 인부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 나갔다. 산신령의 저주라고 믿은 이들이 결국 나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수령탑(樹靈塔)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후에야 병이 나았다고 한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수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거목들의 생명력만큼이나 묘한 여운을 남기는 비석이 존재한다. 일행은 일정상 비석을 직접 마주하지 못했으나 파명곤 이사로부터 그 상세한 내막을 전해 들었다.

대만 파명곤 이사가 수령탑과 성공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삼림의 가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 박사 코이와이 미츠오(小河井光雄·가이드 발음상 '와산하')를 기리는 성공비석(聖功碑)이 그것이다. 이 비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이한 흔적이 발견된다. 박사(博士)의 '박(博)' 자 오른쪽 윗부분에 점이 없으며, 비석에 새겨진 공(功) 자에 '힘력(力)' 자 대신 날카로운 '칼도(刀)' 자가 새겨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비석을 만든 이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장치다. 아리산 히노키 숲을 발견한 공로는 인정하나, 그 발견이 결국 일본의 대대적인 벌채와 수탈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음을 꼬집는 일종의 '비판적 기록'인 셈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진정한 공로가 있는지 없는지 비석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 평가해 보라"는 준엄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수탈의 상처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 삼형제 나무

특히 수령 2,300년에 달하는 '향림신목' 앞에 서면 인간의 짧은 생애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숲 전체가 뿜어내는 짙은 피톤치드 향은 온몸의 감각을 깨우며 정화의 시간을 선사한다. 파명곤 이사는 "베어진 고목들의 넋을 달래던 수령탑의 전설처럼, 살아남은 이 신목들은 아리산의 산증인이자 수호신과 같다"고 설명했다.

거목군 산책로 이정표. /사진=조용식 기자
거목을 자르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사진=조용식 기자
거대한 고목 사이를 지나고 있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식 기자
탐방로에서 만난 자매 연못을 지나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식 기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매 연못의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아리산 삼형제 나무. /사진=조용식 기자
벚꽃이 흩날리는 진정궁의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탐방로에서 만난 자매담과 '삼형제 나무' 등은 수탈의 상처를 입으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틔워낸 아리산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산책로는 거울처럼 맑은 두 개의 호수, 자매담(姊妹潭)으로 이어진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자매의 슬픈 전설이 깃든 이곳은 안개가 잦아들 때면 주변 수목들이 수면에 완벽하게 투영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길 끝자락, 안개 사이로 화려한 금빛 지붕의 진전궁(受鎮宮)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벚꽃이 흩날리는 사찰 앞 광장은 고산의 고요함을 깨우는 활기로 가득하다. 인근 노점에서는 아리산의 명물인 멧돼지 소시지(山豬肉香腸)가 숯불 위에서 익어가며 코끝을 자극한다. 멧돼지 고기는 아리산 원주민들이 사냥을 통해 얻던 귀한 식재료로, 쫄깃한 식감과 깊은 훈연 향은 고된 산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한다.

안개 속의 현대적 안식처, 호텔 인디고 아리산

여정의 첫 마침표는 해발 1,280m에 위치한 호텔 인디고 아리산(Hotel Indigo Alishan)에서 찍는다. 세계적인 호텔 그룹 IHG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이곳은 아리산의 자연과 쩌우족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24년 대만 최고의 지속가능성 호텔 및 2025년 럭셔리 호텔 디자인 금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V자 형태로 세워진 호텔 인디고 아리산의 옥상에는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호텔 인디고 아리산의 침실. /사진=조용식 기자
호텔 객실 TV에는 벚꽃 개화 정보가 제공되고 있으며, 정성스럽게 준비된 다기와 우롱차도 마실 수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신선한 채소는 물론 든든한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대나무 숲을 연상시키는 복도와 아리산의 격자무늬를 재해석한 객실 디자인은 고산의 투박한 자연과 세련된 문명의 조화를 보여준다. 특히 객실 내 TV 화면에는 실시간 벚꽃 개화 지도와 기상 정보가 제공되며, 아침이면 루프탑에서 웅장한 일출과 운해를 감상할 수 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다기와 우롱차는 산속의 서늘함을 따스하게 녹여준다. 

[여행 기자 Note]

의상 : 고산 지대의 기온은 급격히 낮아지므로 경량 패딩이나 방한 의류 지참이 필수적이다.

상비약 : 구불구불한 산길 이동과 열차 탑승이 잦으므로 멀미약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에티켓 : 습지나 원시림 내의 식물을 함부로 만지거나 채취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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