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7. 별이 위로가 될 때
[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7. 별이 위로가 될 때
  • 김 식 수필가
  • 승인 2026.06.1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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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식 수필가

[파이낸셜리뷰] 한때 나는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 쉼 없이 돌고 도는 톱니바퀴처럼 살았다. ‘오늘도 버텼다’는 생존의 기록만 남긴 채 퇴근하던 수많은 밤들. 그 길목 어디쯤,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하늘은 놀랍게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별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어떤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졌고, 그날 이후 나는 ‘밤하늘 보기’를 은밀한 습관처럼 간직했다.

​홍보실에 있을 때의 일이다. 회의실에서는 늘 숫자와 성과, 마감과 예산이 튀어 다녔고, 그 와중에 내가 놓친 건 바로 ‘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할에 충실하느라 내 마음은 갈수록 메말라갔다. 점심시간에도, 퇴근길에도, 심지어는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온통 ‘일’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 홀로 서 있었던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엷게 깔린 그 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 하나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사람들은 나를 열정적인 일꾼이라고 칭찬했지만, 정작 나는 지쳐 있었고, 무기력했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감정을 다 안다는 듯 그저 거기서 빛나고 있었다.

​밤하늘은 늘 그렇다. 다그치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바쁜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밤하늘은 불편한 침묵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침묵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엔 수많은 별이 있고, 그 별만큼이나 수많은 가능성과 길이 숨어 있다. 내가 바라본 밤하늘도 그랬다. 회사라는 궤도에 갇혀 있던 내 삶이, 조금씩 새로운 궤도를 꿈꾸게 된 것도 그 밤하늘 덕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조차 잊고 산다. 스마트폰 화면은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면서, 진짜 하늘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한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나는 밤하늘을 잊고 살았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회사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강공원에서 혼자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전에는 도피처럼 하늘을 봤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그 밤하늘을 즐기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강물, 강물 위로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깊은 우주의 색깔.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느긋하고 충만한 시간 중 하나였다.

​지금은 매일 밤 걷는다.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고, 적당한 자리에 멈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보일 때도 있고, 흐린 날은 구름만 가득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별의 개수가 아니라, 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다. 누군가는 이런 걸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 여유가 나를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었는지를.

​50대 후반이 되니 삶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는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쩌면 밤하늘도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지쳐도, 가끔은 밤하늘을 보자.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너는 참 잘 살아왔어. 지금도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밤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잊고 지냈을 뿐이다. 이제는 그 별빛 아래서 내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정리한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진짜 나와 마주하는 그 고요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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