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화와 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K-팝과 드라마로 시작한 문화적 파도가 푸드와 뷰티, 첨단 기술로 번져나가며 국가 브랜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열기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71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외국인 카드 지출액은 10조 원을 돌파했다. 한국의 유무형 자산이 세계인의 관심을 이처럼 뜨겁게 받은 적이 일찍이 없었다.
K-관광 호황 속 흔들리는 자격 제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세계에 전해야 할 이야기가 가장 풍성해진 지금, 그 전달자의 전문성과 책임을 공적으로 담보해 온 제도의 본래 취지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 예고한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부는 소수어권 인력 부족과 외래 관광객 증가를 이유로 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러시아어·이탈리아어·아랍어 등 6개 언어에 대해, 언어시험 면제자 중 200시간 교육 이수 시 한시적으로 자격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관광 전공자와 국내여행안내사 대상으로 필기시험 면제 요건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인력 부족이 발생한다면 공급 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는 언어별 수요, 계절별 수급 불균형, 제도 완화가 미칠 영향 분석 등 기초적인 실증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충분한 진단 없이 손쉬운 공급 확대 카드부터 꺼낸 셈이다. 이는 단순한 직역·수급 문제를 넘어, 관광통역안내사 제도의 본래 취지와 공적 가치를 다시 묻게 한다.
‘외화 획득’에서 ‘민간외교’로
1960년대 초 관광통역안내사 제도가 출범할 당시, 무엇보다도 절박했던 국가 과제는 ‘외화획득’이었다. 방한 외래객을 통해 나라 안에서 외화를 벌어들이고자, 국가가 직접 자격제도를 마련해 전문인력을 육성했던 것이다.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에는 한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 제도를 통해 검증된 인력들이 외국인의 불신을 긍정적 이미지로 바꾸는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시대에 따라 국가적 과제는 달랐지만, 국익에 기여하고 국가 이미지 제고를 도모해 온 관광통역안내사 제도의 공적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관광통역안내사들 역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그 역할을 이어왔다.
이제 대한민국은 외래객 3천만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외래객이 국내에서 1원을 지출할 때 국내 경제 전반으로 약 1.8원의 생산이 유발된다. 이는 반도체, 화학 등 주요 수출 제조업보다 높은 수준으로, 외래 관광의 폭넓은 후방연쇄효과를 방증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성과는 단순히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는 숫자에 비례해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현행법에도 불구하고 무자격자나 해외 외국인 인솔자가 국내 해설을 진행하는 왜곡된 구조가 방치된다면, 관광 수익의 국내 귀속은 약화되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권한마저 공적 검증 밖에 놓이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입국자 숫자가 아니라 실질적 국익으로 전환하는 질적 관리에 있다.
AI 시대, 생성할 수 없는 서사의 주권
오늘날 국가를 설명하는 일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역설했듯, 국가의 유무형 자산도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때 실질적인 힘을 갖는다.
그러나 국가의 이야기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맥락으로 해석하고 책임 있게 설명할 주체가 필요하다.
AI는 언어를 번역하고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럴듯한 설명과 서사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럴듯함이 곧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I에는 국적도 없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할 의무도 없다. 자신이 생성한 해석의 정확성과 사회적 파장에 대해 책임을 지는 주체도 아니다.
방문객의 표정에서 질문을 읽고,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에서 비롯된 오해를 현장에서 조율하며, 자신의 설명에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지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무리 뛰어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으면 침묵하는 돌과 건물에 불과하다. 같은 궁궐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죽은 유적에 그칠 수도 있고,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역사와 문화가 될 수도 있다.
정보의 양이 폭발하는 AI 시대일수록 사실을 가려내고 대한민국의 서사를 책임 있게 설명할 전문 인력이 더욱 절실하다. 국가자격제도는 바로 그 전문성과 책임을 공적으로 검증하고 보증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방파제다.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소프트파워 인프라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제도를 단순한 행정 규제나 단기적 수급 조절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공항이나 도로가 물리적 인프라라면, 외국인과의 최접점에서 국가의 신뢰와 이미지를 쌓아가는 전문인력과 자격제도는 보이지않는 '소프트파워 인프라'다.
수준 높은 해설을 통해 형성된 신뢰와 긍정적 구전의 편익은 개별 관광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방문과 관광 소비를 촉진하고 한국 문화와 제품에 대한 호감도를 높여,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국가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된다.
정부는 이 제도를 단순한 인력 공급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 전략의 현장 인프라로 재정립해야 한다. 해법은 근거 없는 자격완화가 아니라 무자격 안내에 대한 관리·감독, 자격제도의 고도화, 전문인력의 보호·육성에 있다.
‘누가 대한민국을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기준을 굳건히 지키는 것, 그것이 소프트파워 시대에 국가가 자신의 서사에 책임을 다하고 세계인의 신뢰를 쌓아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의 토대를 다지는 길이다.
명민주 국제공공외교연구소 소장
국제홍보·공공외교 석사 및 동아시아지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외교와 국가브랜드를 주제로 강의해 왔으며, 학술적 이론과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외교의 저변을 넓히는 연구와 실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시적으로 부족한 언어의 관통사는 일정기간 추가시험으로 충원을 하는 것이 중국어의 선례에서 입증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지고 문화가 중요해 질 수록 관광객의 총량적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관광객의 질, 부가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관광의 형태를 발전시키도록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