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역사속 오늘리뷰]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6.10.1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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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97년 10월 12일은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날이다. 500년 넘게 이어진 조선 왕조가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국호와 정치체제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중국 황제 중심으로 유지된 동아시아 전통적인 국제질서에서 벗어나 독립된 주권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물론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간섭이 거세졌고,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했으며, 고종 황제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까지 했었다.

청나라 종주권에서 벗어난 조선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청나라는 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자주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빈자리를 일본이 차지하려고 했다.

이에 1895년 10월 8일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이다.

고종 황제 입장에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일본의 영향력은 약화됐다.

1897년 2월 20일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 경운궁으로 환궁했고, 이후 국가의 자주성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변화를 추진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됐다.

삼한의 역사적 정통성 강조

고종 황제는 새로운 국호로 ‘대한(大韓)’을 선택했다. 대한이라는 명칭은 고대 한반도의 삼한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은 것이었다. 중국 왕조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돼 온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신해 독자적인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국가 의례에서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다.

조선 국왕이 중국 황제와의 외교적 위계를 고려해 사용하지 않았던 황제의 의례를 고종이 직접 거행한 것이다.

고종의 황제 즉위는 더 이상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는 국왕이 아니라 독립된 황제국의 통치자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조치였다.

왕태자는 황태자로 격상됐고, 명성황후도 황후로 추존됐다. 대한제국의 출범은 기존 왕조의 명칭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위상과 통치체제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였다.

황제 즉위 이후 광무개혁

대한제국은 황제 즉위 이후 국가의 재정과 군사력을 강화하고 근대적인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광무개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토지조사와 지계 발급이었다. 정부는 토지의 소유관계와 면적을 파악해 조세 기반을 정비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려 했다.

군사 분야에서는 군제 개편과 병력 확충을 추진했다. 외세의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군사력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공업 육성과 교통·통신시설 확충도 중요한 과제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전차와 전화 등 근대적인 시설이 도입·확대됐으며, 근대적 기업과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도 추진됐다.

그러나 개혁을 뒷받침할 재정은 충분하지 않았다. 철도와 광산 등 주요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열강의 경쟁도 개혁 추진에 제약으로 작용했다.

대한제국이 근대화를 추진하는 동안 일본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은 한반도에 뻗게 됐고, 결국 일본은 한반도를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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