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84년 10월 13일은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세계 경도의 기준인 0도로 채택하는 표결이 이뤄진 날이다.
당시 세계 해운업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의 항해 기준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날 표결 결과는 찬성 22표, 반대 1표, 기권 2표였다. 프랑스와 브라질은 기권했고, 산토도밍고(현재 도미니카공화국)는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등은 그리니치 채택에 찬성했다.
나라마다 달랐던 경도 기준
19세기까지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본초자오선을 사용했다. 영국은 그리니치, 프랑스는 파리를 기준으로 경도를 계산했으며 일부 국가와 지도 제작자들은 별도의 기준선을 활용했다.
위도 0도인 적도와 달리 경도 0도는 자연적으로 정해지는 선이 아니다. 지구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을지는 국가 간 약속에 달려 있었다.
서로 다른 기준은 국제 항해에서 불편을 초래했다. 선박이 사용하는 해도에 따라 동일한 위치의 경도 표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과 철도, 전신망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공통된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졌다.
철도는 도시마다 달랐던 지역시간을 통일하도록 만들었다. 영국 철도회사들은 19세기 중반부터 그리니치 평균시를 운행시간의 기준으로 활용했으며, 북미 철도회사들도 1883년 표준시간대를 도입했다.
전신망 역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시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전달할 공통 기준을 요구했다.
그리니치 기준 이미 72% 사용
그리니치가 국제 표준으로 선택된 데에는 영국의 해상 패권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1675년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명령으로 설립된 그리니치 천문대는 항해에 필요한 천문 관측과 경도 측정 연구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후 영국은 천문 관측 자료와 항해용 해도를 지속적으로 제작했고,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하는 항해 체계는 국제 해운업계로 확산됐다.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에서 제시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세계 해상 상업 활동의 약 72%가 이미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하는 해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자오선을 국제 표준으로 채택할 경우 기존 해도와 항해 자료를 수정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과 혼란이 예상됐다.
그리니치 채택은 영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뿐 아니라 이미 널리 사용되던 항해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결합한 결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