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1일 에디슨 백열전구 실험 성공
[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1일 에디슨 백열전구 실험 성공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6.10.21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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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 바탕으로 만든 AI 생성 이미지./사진=파이낸셜리뷰 DB
기사 내용 바탕으로 만든 AI 생성 이미지./사진=파이낸셜리뷰 DB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79년 10월 21일은 토머스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해 백열전구를 장시간 점등하는 실험을 성공한 날이다.

물론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백열전구의 실용성과 상용화를 이뤄냈다.

에디슨이 주목한 것은 경제성

전기조명 역사는 19세기초인 1802년 영국 험프리 데이비가 전기를 이용한 발광현상을 실험했고, 1840년 워런 드 라 뤼는 백금 필라멘트를 활용한 백열전구를 제작했다. 또한 1870년대에는 영국의 조지프 스완이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전구 개발에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전구의 수명이 짧거나 제작 비용이 높아 보급이 어려웠다. 아울러 전구를 사용할 전력 공급시설은 부족했다.

에디슨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라멘트 재료와 유리구 내부의 진공 상태를 개선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1879년 10월 21~22일 무렵 탄화된 면실을 이용한 전구가 13시간 이상 점등하는 성과를 거뒀고, 이후 연구진은 대나무 등 다양한 식물섬유를 시험했고, 1880년에는 약 600시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전구 뒤 산업, 발전산업

에디슨은 백열전구 실험 성공으로 또 다른 산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발전산업이다. 전구를 상용화해도 전력망이 없으면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에디슨은 발전기와 배전선, 전력계량기, 스위치 등 전기조명에 필요한 설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했다.

1882년 9월 4일에는 뉴욕 맨해튼의 펄스트리트 발전소를 가동하며 상업적인 중앙발전 방식의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

이는 전기를 생산해 고객에게 공급하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받는 사업모델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전구는 고객이 구매하는 제품이었지만, 전기는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이었다. 전력회사는 전구 사용이 확대될수록 반복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구 제조업과 발전설비 산업, 전력 공급사업이 서로의 시장을 확대하는 산업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자본과 결합해 GE로 성장

전기산업이 확대되면서 막대한 투자자금도 필요해졌다.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망 확충, 전기기기 생산시설 구축에는 개인 발명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본이 투입돼야 했다.

에디슨은 관련 기업들을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1889년에는 주요 전기 관련 사업이 에디슨 제너럴일렉트릭으로 통합됐다.

이 회사는 1892년 경쟁기업인 톰슨휴스턴과 합병해 제너럴일렉트릭(GE)으로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J. P. 모건을 비롯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에디슨 자신은 기업 경영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기술을 개발한 발명가가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자본과 전문경영 체제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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