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미국 뉴욕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뉴욕을 상징하는 조각상 중 하나다. 미국의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는 거대한 동상은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숨은 이면에는 흥미로운 경제 이야기가 있다.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고, 결국 시민들의 소액 기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동상 만들고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선물한 동상이다.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기념하고 양국의 우호관게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만든 것이다.
이에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제작을 맡았으며, 내부 철골 구조 설계에는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브 에펠이 참여했다.
다만 동상 건립에는 프랑스와 미국이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었다. 프랑스는 동상 자체를 제작하는 비용을 부담하고, 미국은 동상을 설치할 받침대와 부지 정비 등에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양국 모두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시민 모금과 각종 행사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다. 복권 판매와 공연, 기부금 모집 등이 동원됐다. 미국에서도 모금운동이 추진됐지만 초기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동상 제작이 끝났지만 미국은 받침대 건설비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어디에 세울 것인지가 가장 큰 난관이 됐다.
자유의 여신상은 도착했지만
1885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자유의 여신상은 분해된 상태로 미국에 도착했지만 받침대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자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가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의 신문 ‘뉴욕 월드’를 운영하던 퓰리처는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위한 대대적인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는 부유층이나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부금의 규모와 관계없이 시민 누구나 동상 건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신문에는 기부자의 이름과 기부금을 소개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모금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약 5개월 동안 12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해 10만 달러가량의 기부금이 모였다.
그리고 1886년 10월 28일 마침내 자유의 여신상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제막식에 참석했다.
동상은 횃불을 든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일인 1776년 7월 4일이 새겨진 명판을 들고 있다. 이후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물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