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72년 10월 27일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유신헌법 개정안이 공고됐고, 1980년 같은 날에는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는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다. 그리고 7년 후인 1987년 10월 27일은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키는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된 날이다.
10월 27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라는 이야기다. 대통령 선출 방식과 국가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중대한 헌정사적 사건이 발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27일, 대통령 직선제 빼앗기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10월 유신’이다. 그리고 10월 27일 유신헌법 개정안이 공고됐다.
개정한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 폐지였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새로운 기구가 국민을 대신해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했다. 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임기는 기존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고 중임 제한도 사라졌으며, 대통령에게는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이 부여됐다.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도록 하면서 대통령의 입법부 장악력도 강화됐다.
유신헌법은 같은 해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가결됐고 12월 27일 공포됐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선제가 사라지게 됐고, ‘유신정권’이 들어섰다.
1980년 10월 27일, 유신은 폐지됐지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 제5공화국 출범을 추진했다.
이에 1980년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다. 새 헌법은 유신헌법의 대통령 긴급조치권을 폐지하고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한다는 명분이었다.
다만 대통령 선출은 여전히 간선제로 유신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폐지하는 대신 대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했다.
대통령 선출기구의 명칭과 구성 방식은 달라졌지만 권력의 최고 책임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유신헌법과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더욱이 같은 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출범했다. 신군부가 구성한 이 기구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를 대신해 입법 기능을 수행했다.
1987년 10월 27일, 드디어 직선제를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당시 집권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는 6월 29일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여야 협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리고 10월 27일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율은 78.2%, 찬성률은 94.4%로 개헌안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확정됐다.
새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키고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정했다. 국회의 국정감사권도 회복됐으며 헌법재판소 설치와 기본권 보장 강화 등 민주적 통제 장치가 마련됐다. 개정 헌법은 10월 29일 공포됐고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됐다. 그리고 그 헌법은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