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보니 엠 노래 ‘벨파스트’, 흥겨운 리듬 속 분쟁의 상처
[작품속 경제리뷰] 보니 엠 노래 ‘벨파스트’, 흥겨운 리듬 속 분쟁의 상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6.10.29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보니 엠(Boney M.)의 ‘벨파스트(Belfast)’ 노래는 1977년 앨범 ‘러브 포 세일(Love for Sale)’에 수록된 곡이다. 경쾌한 리듬 속에 도시의 이름이 반복된다.

멜로디만 들으면 축제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누구나 따라 춤을 추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공동체의 분열과 폭력 그리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불안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북아일랜드 도시 ‘벨파스트’를 왜 떠나야 했고, 보니 엠은 간절히 ‘벨파스트’ 도시 이름을 멜로디로 삼았을까라는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종교 문제가 국가와 권력의 문제로

벨파스트의 비극은 북아일랜드 형성 과정부터 있다.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서 분리되는 과정에서 북동부 6개주는 영국에 남았다. 이 지역에서는 대체로 계신교계가 잉글랜드와의 연합 유지를, 가톨릭계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지지했다.

단순히 종교적 갈등으로 보이지만 국가 소속, 정치권력, 사회적 불평등 등 복잡한 요소가 섞여 있었다. 가틀릭계 주민들은 주택 배정, 취업, 지방선거 제도 등의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이른바 68혁명 바람이 불면서 이 지역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민권운동이 확산됐다.

1969년 벨파스트 그리고 데리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고, 잉글랜드는 군대를 투입했다. 이후 공화주의 무장조직과 영국 잔류를 주장하는 충성파 무장조직, 영국군과 경찰이 얽힌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

1972년 1월 데리에서 영국군 발포로 시위 참가자들이 숨지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같은 해 7월 IRA가 벨파스트 곳곳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9명이 사망한 ‘피의 금요일’ 사건이 벌어졌다. 거리와 상점, 버스 정류장까지 공격의 위험에 놓이면서 평범한 시민의 일상도 무너졌다.

벨파스트는 이런 분쟁에 휘말리면서 결국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미음과 증오만이 남게 됐다.

노래에서 아이들이 떠난다는 표현은 도시가 다음 세대 또는 미래의 가능성까지 잃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노래에서는 사람과 아이들을 향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벨파스트’를 반복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후렴구에 계속해서 ‘벨파스트’를 반복함으로써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벨파스트의 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의미도 포함돼 있다.

그 이후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는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이른바 성금요일 협정을 맺었다. 그러면서 평화의 정착이 시작됐다. 협정은 서로 다른 정치세력의 권력 공유와 정체성 존중, 주민 다수의 동의에 따른 헌정적 지위 결정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오늘날 벨파스트에서는 관광객들이 분쟁의 흔적이 남은 거리와 벽화, 옛 교도소를 찾는다.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고 화해의 과정을 배우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사이에 세워진 ‘평화의 벽’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민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신을 해소하는 일은 협정 체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노래가 협정을 맺게 하는 역할은 했는지 여부는 아직 평가를 내리기는 불투명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노래 속에서 벨파스트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