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칼럼] 각박한 사회
[김정훈 칼럼] 각박한 사회
  • 김정훈
  • 승인 2022.04.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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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오늘은 필자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나온 대학이 고려대학교 인데 고대 정문 앞 지하보도에는 원만이 형님이라고 계셨지요.

그때도 풍기는 외향이 저보다 연배가 한참 많으신 것으로 보이셨으니 형님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형님이 왜 원만이 형님으로 불리셨는지 간략하게나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형님이 대학선배님이십니다, 경영학과 출신이라더라 풍문도 있었지만 그 풍문이 사실인지는 지금에 와서도 누구도 모를거라고 추측합니다. 여튼, 그 형님이 원만이 형님으로 불리셨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학생들이나 학생이 아닌 다른 분들이 지나갈때면 그 형님이 백원만 하고 금전을 요구(?)하셔서 백원만 형님이라고 해서 줄여서 애칭으로 원만이 형님으로 불리셨습니다.

원만이 형님이 백원만 하셨을 때 백원이 실상 무슨 도움이 되셨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삼십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오천원 혹은 만원 정도는 해야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대학 친구들과 정문 앞 지하보도를 지나칠 때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어도 모든 시선이 원만이 형님으로 모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똑바로 쳐다보면 기분 나빠하실 까봐 눈을 지긋이 내려 깔면서 눈치를 보면서 말이지요. 누군가 원만이 형님 앞을 지나가면 원만이 형님은 누구에게는 그 '백원만~'을 요구하셨고 누구에게는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당시 친구들 끼리 추정하건데 인간성이 더러운(?) 사람에게는 '백원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에게만 '백원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 논쟁 아닌 논쟁도 했었지요.

아쉽게도 저에게는 '백원만~'을 몇번 하지 않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상기해 보면 원만이 형님은 사람 보는 눈이 계셨던 것 아닌가 마음이 좀 아프네요.

가물가물 하지만 제 기억으로 원만이 형님이 다리를 좀 저셨던 것이 어렴풋나마 기억이 납니다. 기사를 살펴보니 지난 2003년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학생들이 '원만이 아저씨 돕기 사랑의 캠페인'을 열어서 성금을 모아 원만이 형님 다리를 치료해 주려고 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2003년이면 필자는 취직해서 돈 벌어 보겠다고 아등바등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인데 그 때 후배들이 그런 대견한 생각을 했었다니 사람됨은 나이가 먹는다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구나 다시 한 번 반성해 봅니다.

갑자기 원만히 형님을 필자가 언급하는 것은 젊을 적 나름 아름다웠던 대학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추억팔이를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물론 그 시절이 어려움이 아예 없는 절대적으로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래도 호시절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요.

지금 생계를 위해서 여러분들과 같이 아등바등하는 필자의 생활을 돌아보고 있자니 그 때의 원만이 형님이 생각납니다.

저보다 형편이 나으신 분도 계실테고 형편이 휠씬 안좋으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실상 객관적으로 보면 각자가 처한 형편의 차이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사회라는 굴레에 얹혀서 사회에 '무엇무엇 했으니 돈 주십시요~' 하고 있는 모습이 원만이 형님이 하고 있는 '백원만~'하는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원만이 형님은 조건없이 '백원만~' 하시니 저보다 오히려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우셨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2002년 처음과 비교해보면 갈수록 삶이 너무나 각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에는 비정규직도 없었고, 아니 정확히 표현 하자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슬슬 생겨나는 시점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요.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신자본주의다,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어야 우리가 살수 있다 하면서 양극화를 당연시 하고 힘없는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해왔단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누구를 위한 자본이고 무엇을 위한 자본의 축적일까요? 사실 공동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힘없는 누군가를 벼랑으로 내밀고 벼랑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벼랑으로 떨어지는 이웃을 보며 그것이 떨어지는 이웃의 문제라고 애써 외면해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기업들이 자본을 축적해서 일반 국민도 '낙수효과'로 그나마 조금 더 잘살게되는 거 아니냐 하시겠지만 솔직히 말해 재벌 대기업들이 그렇게 자본을 축적해서 모든 경제적 이익을 쓸어갈 때 과연 그것이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일개 소시민인 필자는 알 수 있을리 없으니 개인적인 사견이라고 치부하셔도 할말은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답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근래 많은 이들의 사망, 부상사고가 난 X동 참사, 화X동 아파트 붕괴사고와 관련한 H모 건설사가 4억이란 과징금으로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피하고, 부실시공에 대한 처분은 집행정지 신청으로 피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라도 현재가 우리가 원하는 답에 가깝지 않음을 논리적 추론이 아닌 감정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우리 모두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좀더 나아질 거라는 환상과 같은 희망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을까 두려워집니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누군가 우리를 세뇌시킨 것 일수도 있겠지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우리 자신들을 돈에 얽매게 노예가 되게 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사회라는 굴레에, 경제라는 멍에에(좋은 말로 경제지 사실 막연한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돈이겠지요.) 다림쥐 쳇바퀴 돌 듯 얽혀있게 되었을 까요?

과연 누구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이루어졌는지 아무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를 세뇌시킨 그 분을 자체를 만날 수 있다면 더욱 명확해 지겠지요.

바쁜 시절이 지나고 시간이 좀 나니 제 삶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겠지요. 오랜만에 친우들을 만나 기분 좋게 한잔 하다보니 이런게 진짜 실제의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지금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주변 분들도 항상 행복하게 배려해주는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독자 여러분이라도 그러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정훈 약력 :

공인회계사

세무사

내부감사사

IFRS Manager

現 삼지회계법인 이사

現 한국심장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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