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한국경제발전 70년(1) : 한국전쟁 폐허로 부터 부흥
[정인준 칼럼] 한국경제발전 70년(1) : 한국전쟁 폐허로 부터 부흥
  • 정인준
  • 승인 2022.07.0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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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1952년 한국전쟁 기간 중 독재자로 비난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추진한 대통령 및 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해 당시 한국전 종군기자인 영국 The Times 기자는 “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expecting democracy to bloom in Korea is like hoping for a rose bloom in a garbage can)”라고 표현했다.

북한의 남침으로 1950년 6월25일 시작된 3년간의 전쟁의 폐허에서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던 1955년 IMF가 산출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5$로, 아프리카의 가나, 가봉보다 적었다. 1955년 10월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에 참여한 벤가릴 메논 인도 국회의원은 “한국에서 경재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며, The Times지의 기사를 인용해 말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신생 독립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이다. 전쟁의 폐허위에서 70여년 만에 절대빈곤의 농업국에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는 지금도 많은 빈곤국과 개도국들이 따라하고 싶은 꿈이다.

1997년 IMF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했던 한국 경제는 2019년 경기부진과 내수 침체를 겪으면서 성장률 1%대로 추락하였으며, 2020년 초 발생한 판데믹(코로나19)이 2년 이상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단계로 진입해가는 과정에 있다.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되는 세계화의 퇴조와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에 의해 향후 2-3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경기침체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위기이며 도전이다.

국내적으로도 지난 5년 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에 따른 재정적자와 과다한 가계부채 증가 및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가격 상승에 의한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있어 현재 한국 경제의 위기는 과거 경험하지 못한 국·내외적 요인에 의한 복합적인 위기라고 하겠다.

9년 3개월간 朴正熙 대통령 비서실장(1969.10-1978.12)을 지낸 김정렴씨는 IBRD 초청 ‘동아시아로 부터의 교훈’ 제하 간담회(1993.3.25-3.26, 워싱톤)에서 1961-1979년간 박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을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김정렴 회고록, 중앙일보 1997.5.19자)

‘우리나라 경제개발정책의 특징은 강력한 정부주도형이었습니다. 주요 경제시책으로는 수출을 적극 진흥했고, 중화학공업을 건설했으며, 방위산업을 육성하였습니다. 농업부문은 새마을 운동으로 개발했습니다. 여러 가지 성공사례 중 포항제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은행은 개도국의 종합제철 건설을 반대해왔으나, 우리는 세계은행의 지원 없이 포항제철을 건설했으며, 성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면서 과중한 방위비를 견뎌내야 했으며, 경제개발을 급속하게 하다 보니, 지역 간에 불균형도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개발도상단계에서 도약(take-off)해 20여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진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한 경제기적을 이룬 근본 요인은 朴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이었다고 나는 감히 이야기 합니다. 박대통령은 국민에게 꿈과 미래상을 제시하고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고 호소하면서 한국인의 단결을 고무시켰습니다.’

1979년 노벨상 수상 아서 루이스 교수는 경제발전의 요소인 시장, 기술 및 자본 외에 ‘경제하려는 의지’를 추가했다. 김정렴 비서실장이 평가한 박정희대통령의 리더쉽은 ‘잘 살아보세’라는 슬로건아래 국민과 기업 및 정부 관료들의 경제발전 의지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수출중심으로 경공업에 이어 중화학공업을 육성을 통한 한국 경제발전은 국민통합의 기반위에서 추진되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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