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테러리즘은 민주주의를 경멸한다
[백병훈 칼럼] 테러리즘은 민주주의를 경멸한다
  • 백병훈
  • 승인 2022.07.12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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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일본의 전직 총리 아베 신조(安倍 晋三)가 총격으로 암살당했다.

일본 정치의 거목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일본은 충격과 참담함에 휩싸였다. 그는 일본의 총리 중 살해 당한 일곱번째 희생자가 됐다. 동기 여하에 관계없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살해는 카인의 시대 이래로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일본 보수우익정치의 상징 아베

A급 전범(戰犯)의 외손자이자 일본의 대표적 세습정치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한때 야구선수를 꿈꾸었다. 대학에서는 양궁을 배웠고, 젊은 시절에는 잠시 제철소에 근무하기도 했다. 좋은 집안 탓에 장관에 취임한 부친의 비서관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 후 부친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부친의 지역구를 이어 받아 중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9번이나 당선됐다.

그는 일본 보수우익정치를 상징하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전후세대 첫 총리였다. 자민당 소속의 총리가 된 후, 일본 역사상 최장기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고, 일본을 대변혁시키고자 했다.‘전후 체제로부터의 새로운 출발’을 내세운 아베의 정치는국정을 쇄신시켰고 일본경제의 난제였던 디플레를‘아베노믹스’라는 처방으로 진정시켰다. 외교적으로 미래지향적 국제관계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이에 일본인은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 한 때 70%라는 높은 국민적 지지로 화답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와 위안부 문제 처리에서 여러나라 국민들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런 아베의 정치적 꿈은, 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이 보통의 나라들처럼‘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일본의 자존감을 부활시키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전후 일본인의 자긍심을 일깨워 준 사람의 하나였다. 그가 남겨 놓은 정치적 유산은 일본정치의 흐름에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할 것이다. 아베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일본의 젊은이에게 암살을 당했다. 왜였을까?

광기(狂氣)어린 테러라는 이름의 폭력

인간을 살해하는 폭력은 역사 이래 존재해 왔다. 이런 폭력을 간디는“야성(野性)의 법칙”이라고 규정했다. 동물은 자기보존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심리적 기제를 갖고 태어난다. 인간은 사회비교우위의 기준에서 열등감과 박탈감, 상실감을 느낄 때 비타협적인 현상타파 심리에 빠져 든다. 또, 인간은 자신이 생존하여 존재할 공간을 제도화된 사회가 허용하지 않거나 빼앗아 갈 때 저항의 몸부림으로 항거한다.

이 모든 상황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기제는 증오와 분노에 가득찬 물리적 폭력이고, 상대방에게는 극렬한 공포심과 불안심리를 공황상태로 몰고 간다. 이것이“야성의 법칙”이며 폭력적 테러의 목적을 설명한다. 결국, 테러는 인간성의 자기파괴 행위이다.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평신도 신학자 쟈크 엘룰(Jacques Ellul)은“나는 폭력에의 호소는 하나의 무능력의 표시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썼다. 아베를 쓰러뜨린 범인의 동기가 특정 종교단체와 관련된 개인적 원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범인은 문제해결에 최소한 무능했다. 최소한의 도덕률과 이성은 그에게서 떠났다. 오직 야수와 같은 증오의 분노만이 자신을 탄원할 수 있는 마지막 법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오르는 적개심을 테러로 표현했다.

테러는 억압과 폭력에 의한‘대중의 공포’를 지배와 통치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의 행사가 공포주의 즉, 테러리즘이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테러의 정치심리공학적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일찍이 칼⸱포퍼(K.Popper)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의 내용을 열린사회로 규정하고 이같은 열린사회의 적(敵)의 하나로 유토피아와 비타협적인 급진주의를 꼽고 경고했었다.

그가 우려했던 급진적 사고와 행동은 현대에 이르러 테러리즘의 뿌리가 됐고, 폭력과 파괴의 깃발이 되었다. 그 결과 테러리즘은 오늘날 국경과 지역을 초월한다. 소수민족 분리운동은 국제테러리즘의 확산 계기가 됐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총격은 빈도가 더해지고 있다. 종교나 문명의 차이는 세계 도처에서 성전(聖戰)의 이름으로 자살폭탄 테러로 발생한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사회의 다양성에 따른 사회병리 요인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산업사회의 발달, 인종⸱종교⸱문명의 갈등, 공동체의 파편화, 사회적, 경제적 불공정과 불평등, 인간소외, 과다한 경쟁사회 등의 요인은 증오와 저주의 사회화를 잉태한다.

권력암투, 전쟁과 분쟁, 국가폭력, 적국의 파괴공작, 국경없는 지구촌 환경과 사이버공간의 범람, 정신질환, 소영웅주의 등은 폭력행위의 방패와 자양분이 된다. 결코 누구도 완벽하게 피해 갈 수 없는 테러의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그리하여 테러리즘은 인간 야수성의 모습으로 더 가까이, 더 자주 다가온다. 이렇듯 현대인은 테러리즘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잘 준비된 그 어떤 방호벽도 증오심으로 가득찬 분노의 화살은 쉽게 막아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향한 여정은 멀기만 하다. 열린 민주주의 사회에서 테러라는 폭력은 민주주의를 경멸한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폭력은 오만이요, 분노요, 광기이며, 악마의 미소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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