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대의민주주의의 거대한 “역설”
[백병훈 칼럼] 대의민주주의의 거대한 “역설”
  • 백병훈
  • 승인 2022.07.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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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왜 흔들리고 도전 받는 것일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의미심장한 컬럼을 내 놓았다. 2년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사회조사기관이 실시한‘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인 30%가 한국민주주의에 대해 반감과 불신을 드러냈으며, 한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보인다고 이 컬럼은 전했다.

대의민주주의의 덫, 다수결 만병통치약

의회나 정당이라는 용어는 국가통치와 운용에 관한 것이다. 대의제(代議制)민주정치는 국민이 간접적으로 국가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고 의회와 정당을 매개수단으로 삼는다. 오늘날 의심의 여지없는 세계사적 사조(思潮)이다. 오죽했으면 1820년, 영국의 계몽주의 정치학자 제임스 밀(J⸱Mill)은 대의제민주주의를“근대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까지 축복했을까.

이처럼 대의민주정치는 민주주의를 향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의 출발이었다. 한국은 대의민주정치의 나라다. 그런데, 한국은 30%의 함정에 빠졌고 민주주의의 미래가낙관적이지도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대의민주주의의 역설(逆說)은 현실을 파고든다.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역설의 결정판은“다수결”의 원칙이다.‘솔로몬의 지혜’이자 세상의‘만병통치약’을 자부하는 다수결의 원칙은 자칫 다수파의 독선과 독주, 전횡을 불러 오고 의정의 파행을 초래한다. 민의가 왜곡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다수결의 미필적 폭력성과 결과론적 야만성은 대의민주주의의 덫이다.

그래서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미완의 작품으로 본다. 독일의 위대한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 막스 베버(M⸱Weber)는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는 지배를 위한‘정당화’의 한 형태라고 정곡을 찔렀었다. 대의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어떤 문제일까?

오늘날 한국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의석수가 적어 되는 일이 없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터져 나온다. 원활한 국정운영과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다수의석 당에 의한 머릿수 밀어붙이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수결의 횡포인“거악”을 없애지 않고 대의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위선이다.

예컨대, 민주당이 과거 '운동권 셀프보상법' 이라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재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수의석을 갖고 있을 때 밀어 붙여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는 운동권의 독과점 대상이 아니다. 민의의 왜곡은 국정파탄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협치와 당론의 자기모순

역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다수결의 문제로부터 파생되는 협치(協治)와 당론(黨論)이다. 다수당의 머릿수 밀어붙이기 속에서“협치”가 가능하겠는가? 여야 정파가 마지못해 국민의 눈치를 보며 협치를 말하지만 이 또한 빛 좋은 개살구다. 주고받기식의 옹색한 정치적 표현이 협치다. 그런데, 인계철선이 끊어지면 국민 기만, 민의 우롱이라는 분노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인계철선은 늘 국민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진정 협치를 협치답게 승화시키려면 강압적“당론채택”이라는 멍애를 벗겨내야 한다. 당론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해방시켜야 나라가 산다. 정당이 당의 노선을 정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과 당론을 강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당론이라는 명분으로 각자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국정의사결정 권한이 거부된다면 이는 당내독재다. 반독재를 향한 길고 길었던 민주의 여망이 민주의 전도사 자신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을 위한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자살로 가는 지름길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회 본회의 투표 시 강제와 부당한 압력이 없는 의사형성과정으로서의 투표, 즉“자유선거의 원칙”에 따른 투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보통, 비밀, 평등, 직접선거에 이은‘선거 5대원칙’이다.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는 의원 개개인의 찬, 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 안건에 대한 찬, 반, 기권, 무효의 집계된 총 숫자를 모아 의장이 선포하면 된다. 한국대의민주주의 정치발전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이제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훔치는 국회파행의 위선과 자기기만을 그만두어야 한다. 위선과 자기기만으로는 의회정치가 꽃 피울 수 없다는 통찰을 양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독일 제3제국 나치당의 천재적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 그는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격동기 독일에서 국민들은 독일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주류 정당들을 혐오하고 냉소했다. 마침내 그는 문제의 출발점을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서 찾았다.

그의 눈에는 독일 대의민주주의는 정략의 목적으로 민주주의를 사고파는 요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다. 이윽고 그는 "민주주의의 사기극이 의회”라고 세상을 향해 조롱했다. 그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거대한“역설”을 보았던 것이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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