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금 밥그릇 싸움할 때인가?
[백병훈 칼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금 밥그릇 싸움할 때인가?
  • 백병훈
  • 승인 2022.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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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한국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4개월의 고난도 비행 끝에 달 임무궤도에 안착했다. 앞으로 1년간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 하면 한국은 러시아, 미국, 중국, 유럽, 일본, 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된다.

한국 우주개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가슴 뿌듯한 일이다. 다누리의 기쁜 소식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실이다.

때마침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세계가 우주패권 경쟁에 나서 우주자원 확보와 미래우주산업 선점을 위해 매진하는 상황에서 21일, 윤석열 정부는 본격적인 민간주도 우주산업 육성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잘된 일이다.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항공우주과학의 발전과 우주산업 개발은 ‘우주경제’라는 뜻에서도 한국이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당초 항우연은 민간 차원의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출발해 항공우주과학, 항공공학 기술개발을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토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심각한 핵미사일 도전은 한국이 항공우주산업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군사용 미사일과 민수용 우주발사체는 로켓공학적 기술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항우연도 국가안보 자산이다.

북한의 핵과 로켓공학기술의 성과를 그저 시기심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북한이 기술적으로 너무 앞서 나갔다. 그들의 도발이 더욱 구체적이고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항우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라야 한다.

예컨대, 북한은 작년 노동당 8차대회가 제시한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과업’ 실천에 매달려왔다. 다양한 전술핵무기개발과 초대형핵탄두 생산, 15,000Km 사거리의 명중률 제고, 극초음속활공탄두개발, 수중 및 지상 고체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등이 그것이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이중 상당 부분에 대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올해 11월 18일, 무려 320톤의 추력을 가진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7’의 2번째 시험발사를 마친 것과, 12월 15일, 140톤 추력의 ‘대출력 고체로켓엔진’ 지상연소실험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대출력 고체로켓의 완성은 전장 판도를 뒤바꿔 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북한이 여기까지 왔다.

국내외 상황이 이럴진대 항우연이 커다란 논란에 빠졌다.

최근 단행된 조직개편에서 누리호 시리즈를 담당했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가 해체되고 느닷없이 ‘발사체연구소’가 새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개발주역들이 반발하여 보직에서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발하는 사람들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나로호, 누리호 등 한국 로켓개발의 역사를 써내려 온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항우연이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발사체본부에 연구개발조직을 두라고 규정한 “‘운영관리지침’을 위반했고, 연구자들이 모두 떠나게 됐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항우연은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의 임무가 누리호 1, 2호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돼 있었다고 해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조직개편의 취지가 현재의 발사체본부로서는 누리호 3차발사의 성공, 산업체 기술이전, 차세대 및 소형 발사체개발사업, 산업 활성화를 통한 우주경제 실현, 달과 화성탐사의 체계적 준비 등을 감당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기존 연구인력도 모두 재배치되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도 내년 6월까지 존치된다고 설명했다.

어찌보면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을 수 있다. 항우연 내부의 갈등은 과학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다만, 국민들은 항우연에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모르고 어안이 벙벙했을 터이다.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 사태에 대해 터질 것이 터졌다고 한다. 혹자는 누리호 개발팀이 토사구팽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항우연에는 원장 위에 ‘상왕’이 있다고 말한다. 또 혹자는 기득권을 움켜쥐려는‘항우연 마피아’의 저항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과연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는 몰라도 항우연에는 뭔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왔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자주국방을 염원해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를 만들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이 엄중한 시기에 사태의 당사자들이 ‘과학기술 보국’이라는 숭고함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과학자는 애국심을 먹고 산다. 국민들도 이 사태의 전말을 눈치 챈 마당이다.

실무적으로는 전문성에 기반한 위임체계의 합리화로 내부 조정능력과 협력 시스템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조직 민주주의’의 과감한 채택은 갈등과 분란의 요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우주항공청’ 신설이 예정되어 있다. 이같이 국가적 사안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생산적 비판의 문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성으로서의 용기도 필요하다.

차제에 이번 사태로 젊은 연구원들이 항우연을 떠난 것은 아닌지, 항우연을 챙겨줄 일은 없는지 반성하는 마음에서 정부 차원의 검토도 뒤따라야 한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먹거리고 희망이며 국가안전보장이다.

국민들은 그날, 고흥 하늘에 펼쳐졌던 감동과 그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변함없는 영웅들이다. 이제 청춘을 불살랐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오라.

백병훈 약력

비교정치학 박사

한국정치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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