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병사 월급 200만원은 인기영합주의다
[백병훈 칼럼] 병사 월급 200만원은 인기영합주의다
  • 백병훈
  • 승인 2023.03.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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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병사 월급 200만원 지급이라는 잇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 당시 20대 남성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가 당락을 결정할 변수로 떠올랐었다. 막상막하의 다급한 순간에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라는 비장(秘藏) 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선자는 이를 공식적 정책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선투표 결과 표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고, 젊은 20대 남성의 표 덕분으로 당선 되었다고 생각해서 정부 예산에 무리가 가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왠지 의문이 든다.

2022년 기준으로 병장 봉급이 67만 6,100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5년까지 병사 봉급 96만 3,000원을 내세웠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2023~2027년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병사 월급을 2025년까지 150만원으로 늘리고 이에 더하여“내일준비자금”55만원을 매월 지급하겠다고 했다. 부사관(副士官)에 대한 언급은 이 계획에 없다. 한 사안을 놓고 차이가 많이 남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여러 상황을 보더라도 병사 200만원 봉급 구상은 졸속한 정책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70년대 당시만 해도 군 생활에서 사병의 봉급은 아예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국가가 불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 나서는데 급여나 봉급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 불가한 그런 시대상황이였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제대하는 날, 매달 몇 푼씩 부대에서 적립해 준 것을 한몫에 손에 쥐어주고“수고했다. 잘 고향으로 가라”는 이 한마디가 너무 신기하고 고맙기 까지 했다.

그것을 고향집 먼 거리를 가는 교통비에 쓰고, 남은 돈으로 맨손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게 되어 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사병에게 봉급, 월급, 급여라는 세속적 개념은 상상조차 어려운 시절이 이렇게 있었다. 비록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병사 봉급 200만원 구상은 여러 방면에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병사 월급이 병장 기준으로 금년에 100만원이 되어 10년 동안 771% 증가했다. 반면 하사 1호봉 기준 부사관은 금년에 177만 8,000원이 되어 10년 기간 동안 18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부사관(副士官)은 장교와 병을 이어주는 군의 중추에 해당하는 전문기술과 지식을 갖춘 직업군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병사가 진급하여 부사관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부사관을 별도로 선발한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직업군인으로서의 중요성이 감안된 것이지만 처우는 이처럼 밑바닥이나 다름없다.

국방비의 효율적 배분 역시 전면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도래했다. 가뜩이나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강군육성을 위해서는 민간영역과의 결합은 물론 각 병과별 전문기술이 절대 필요하고 편제개편 역시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첨단 과학기술로 군의 과학화를 앞당겨 디지털, AI, 드론 등 변화된 세계 전장(戰場)의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2023년도 국방예산 57조 1,268억 원은 이런 목적사업에 투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갑작스런 큰 폭의 병사 봉급인상은 부사관과 초급장교의 봉급은 물론 일반 공무원들의 급여인상 요구와 맞물려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밀어 붙인다면 이 모든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병사 월급 200만원은 현실을 가볍게 생각한 정치적 포퓰리즘이 낳은 기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선거는 그 속성상 유권자의 마음을 빼앗아 훔쳐오는 것이다. 그래서“달을 따다 주겠다”는 언어의 유희가 화려하게 춤추는 곳이 정치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모병제를 실시할 단계도 아닐 뿐만 아니라, 북한의 강도 높은 군사적 위협에 맞서 국민의 국방의무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상황이 아니던가?

비록 정치가 국민과의 약속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회적 인간행위이지만 잘못 판단된 약속은 파기되거나 수정되어야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민과의 약속이었다고 할지라도 선거를 앞두고 다급한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급조된 정책, 공약, 약속이었음이 뒤늦게나마 확인이 되면 서둘러 거두어들이거나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표를 얻기 위해 세심한 검토 없이 내뱉은 정책이라면 이는 인기영합주의에 야합하고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꼴이 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기주의에 야합하여 국정을 파탄 낸 문재인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정치판에는 늘 역풍이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대부분 군사전문지식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안다. 정치는 쉬워야 한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전후사정을 이해해주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진솔하게 이해를 구하면 된다. 변명이 아닌 진실이면 된다. 진실은 허물을 덮어 버린다.

지금이라도 병사의 봉급인상 폭을 재조정해야 한다. 포퓰리즘이 국가안전보장을 다루는 정책사안까지 물들이면 국가의 근간이 멍든다.

헤겔은 “가장 해로운 것은 오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진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잘못된 약속을 과감하게 시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용자(勇者)만이 진정한 정치인이다. 이제 병사 월급 200만원이라는 인기영합주의에 투항하지 말고 진실의 입장에서 회군(回軍)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병훈 약력

비교정치학 박사

한국정치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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