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칼럼] 니체의 초인
[김진혁 칼럼] 니체의 초인
  • 김진혁
  • 승인 2023.04.2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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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독일 실존철학의 선구자,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는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당시 그리스도교도의 신과 인간의 이분법적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충고이다.

허황하고 형이상학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중시하라는 주장이다. 신을 죽이고 난 뒤 인간은 더는 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초인(超人, Übermensch)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척박해졌고, 혼란이 가중되었다. 인간의 고독과 두려움은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는가? ‘운명을 수용하고 사랑하라.’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3가지 단계로 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단계는 낙타의 단계다. 낙타의 특징은 주인에 대한 절대복종 혹은 순종이다.

낙타는 아침에 무릎을 꿇어 짐을 싣고 저녁에도 주인 앞에 무릎을 꿇어 짐을 내린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진정한 겸손의 자세를 보인다. 낙타는 주인에게 자신의 강인함과 주인을 위하는 마음을 증명하고자 많은 짐이 자신의 등에 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낙타에게는 비판이란 있을 수 없고, 낙타에게 주인은 말 그대로 신과 같은 존재이다. ​

두 번째 단계는 사자의 단계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과 자신이 사막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고자 한다. 이전에는 주인의 말에 무조건 받아들이고 순종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려고 한다. 이때 만약 자신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면 사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고독하고 불안감은 여전하다.

세 번째 단계는 바로 아이의 단계다. 아이들은 어떤가? 매 순간을 즐기고, 나쁜 일도 금방 잊어버리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어딘가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유희와 기쁨으로 긍정을 굴러가게 하는 바퀴와 같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항상 이 세 단계를 단계적으로 거쳐 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는 낙타가 되기도, 사자가 되기도, 아이가 되기도 한다.

니체는 “삶이란 긴 죽음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신 대신 새로운 존재로 초인을 내세웠다. 니체는 현실의 참혹함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성 보다는 의지의 철학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주장했지만 정작 죽음을 두려워했다. 정신착란으로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면서 55세 나이로 쓸쓸히 죽었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궁극적으로 ‘가치’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니체를 “존재 망각의 극단”이라며 극렬하게 비판한다. 니체 사상은 존재 자체의 고유성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사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한계를 지녔다.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것은 현실 불가능하다.

간혹 황량한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를 보고 있으면 힘들고 고단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짐을 실어야 했던 낙타의 혹은 혈흔으로 얼룩진 상처투성이다. 커다란 짐을 이고 사막을 종단하는 낙타처럼 현대인도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삶을 어렵사리 영위하고 있다. 때론 우리의 삶이 화려하고 빛나 보이지만, 내면의 고독과 상처가 삶을 더없이 가혹하게도 한다. 낙타가 오아시스에서 멈추듯 인간도 편안한 삶을 선택하고 살았으면 한다. 인간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 어디가 종점이고,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지 도통 알 수 없지 않은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세요!

젊고 파란 하루의 선물을 받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좁은 오솔길도 수시로 바람이 드나드는 여유로움,

지치고 방황할지라도 희망의 위로를 적시는 행복의 숨소리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믿음, 소망, 사랑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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