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칼럼] 최저임금과 일할 수 있는 자유
[김정훈 칼럼] 최저임금과 일할 수 있는 자유
  • 김정훈
  • 승인 2023.06.13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이낸셜리뷰]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최저임금과 자유’, ‘장하준 교수의 주 69시간과 최저임금’,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하고 싶은 자유’, ‘최저임금 정책과 경제발전’ 등 여러가지로 말이지요.

결론은 보시다시피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할 수 있는 자유’로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은 ‘....일할수 있는 자유’로 할 것인가 ‘....일하고 싶은 자유’로 할 것인가 이었죠. 고민 끝에 ‘최저임금 보다 적게 받고 일하고 싶은 자유’란 말 자체로 모순되고 일하시는 당사자는 누구도 원하지 않으실 것이기에 위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장하준 교수님이 방한을 하셨습니다. 새로이 출간되는 책을 설명하실 겸 해서 오신 것 같습니다. 워낙 저명한 경제학 교수님이기도 하시고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쓰디쓴 약과 같은 견해를 많이 보여주셔서 이번에는 어떤 견해를 들려 주실까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장하준 교수님의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에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에서 장병들이 읽기에는 부적합한 유해도서라고 지정, 반입 금지한 것이 기사화되어 한동안 시끌벅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008년도에 유해도서 지정이라니, 그것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저술을 말이지요.

물론 내용이 선진국, 그중 특히나 미국의 세계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보니 책 내용 보다는 반미 정서 탓에 지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말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유해도서 담당자가 책도 안 읽어보고 책 제목과 소문만으로 유해도서로 지정한 것 아니냐는 유머 아닌 유머도 돌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국방부의 본의와는 다르게 한동안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정말 재미나는 에필로그 혹은 쿠키영상 이였지요.

장교수님의 책 중 유명한 몇가지를 고르자면 최초 저술인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리고 최근에 집필하신 ‘경제학 레시피’ 등이 있겠습니다.

최초 저술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2002년에 출판한 책으로, 이 책은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 시장개방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한 보호무역 정책 등의 개입주의적인 정책들을 이후에는 이러한 정책들을 개방주의 정책으로 전환하여, 개발도상국들이 이전에 선진국들이 사용했던 발전 방법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은유입니다.

이 책에서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시장개방 정책이 실제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했던 보조금, 관세, 규제 등의 정책들이 지금은 개발도상국들에서 금기시되거나 금지되어, 이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정리하자면 ‘사다리 걷어차기’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고려한 더 현실적인 발전 방식을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고려한 경제발전 방식을 주장하시다보니 장교수님은 역사적 제도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리입니다. 기존의 신고전파,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등을 위시한 주류 경제학과는 구별되므로 비주류에 해당하는 경제학 분야에 계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사실 제가 장하준 교수님을 언급한 것은 그 분의 저술과 경력을 설명 드리고자 함은 아니고 방한하셨을 때 그분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아서 그 부분을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몇달은 되었지요? 정부가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대해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밀어 붙인 적이 있었습니다.

개편 내용의 골자는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 법안의 추진이었습니다. 언뜻 봐서는 쉽게 이해가 안되는 어려운 표현이지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노동시장에서의 규제 최소화 및 노동시간 연장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최저임금 이하로 받고도 일하고 싶은 국민들이 있는데 최저임금이 일하는 기회를 막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노동계와 학계는 물론 MZ세대들에서 크게 반발이 일어나자 고용복지부 장관이 진화하듯 해명하는 일이 벌어졌고, 나중에 대통령실에서 발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고용복지부 장관이 국회의원들의 질의 공격에 진땀 흘렸던 장면이 매체에 많이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이 일었던 시점이 공교롭게도 장하준 교수님의 출간기념 방한일정과 겹쳤으니 대부분의 인터뷰 내내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었죠.

제가 본 인터뷰만 해도 3~5개가 되는 데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한 답변은 한결 같으셨습니다. 인터뷰에서는 대부분 새로 출간되는 책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그 내용은 생략하고 한국의 현안에 대한 답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저출산율 시대에 주 69시간이라니 경악스럽다.’

‘지금의 한국상황에서는 노동생산성이 화두가 되어도 모자랄 판인데 1970년~80년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생산투입시간 늘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업 감세 정책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진보정당을 보면 경우에 따라 보수정당보다도 오른쪽인 경우가 많아서 진보로 부르기 어렵다. 그러니까 집권해도 금방 밀려나고 만다. 시민들 입장에선 큰 긍정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진보 정권의 실수와 부정 사례가 자꾸 노출되니 다시 표를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후임 보수 정권은 그나마 진보 정권에서 이뤄진 성과도 퇴보시켜버린다. 다른 나라 진보 성향 정당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개편으로 일할 자유를 주겠다는 데, 그 정부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말이죠.

정부에서 주장했던 것이 ‘낮은 보수에도 일하겠다고 하는 근로의 자유와 주 52시간을 넘어 69시간을 노동할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일할 자유를 주겠다!’ 이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근로 국가로서 OECD 1~2위를 다투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자동화와 AI가 중요하다고 하는 데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접근방식에 의아해 했습니다만... 장하준 교수님의 촌철살인은 정말 무섭더군요.

‘정부에서 말하는 자유는 가진 자의 자유일 뿐이다. 자유라는 개념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강도가 피해자에게 너에게 모든 돈을 내줄 자유와 죽을 자유를 주겠다하는 것은 자유인가?’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을 두고 많이 고민해 봤지만 진실은 이게 아닐까요?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할 자유...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놓은 굴레가 아닐까 합니다. 일자리가 없고 당장의 생계 유지가 걱정인 분들에게는 최저임금 밑으로 받더라도 일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주 52시간이 넘는 69시간 일해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선택해야만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즉, 최저임금 밑으로 받고 일하고 싶은 분이 계신 것이 아니고 주 69시간 이상 일하고 싶은 분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악조건이라도 일해야 하는 좋지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시민의 안녕을 지키고, 시민을 삶과 경제상황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최저임금 보다 적게 받고 일할 자유, 주 69시간 일할 자유를 논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인가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분들을 제도화시켜서 안착시키겠다는 것인가요?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기득권, 가진 사람들의 제도화 시킨 착취입니다. 다른 선택 수단을 없게 만들어 놓고 할거야? 안할거야? 라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을 자유라고 포장하다니 정말 소름끼칩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경제지표라는 숫자들에만 집착한 나머지 진정 보살펴야 하는 각 개인들의 삶을 의도적이든 아니면 무지로 간과하였든 이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에 신물이 납니다.

정책의 수립 및 결정에는 보다 신중한 태도와 보다 폭넓은 자료 및 전문가를 포함한 다수의 의견이 경청돼야 이러한 무모한 정책의 추진이 적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정훈 약력

前 삼정회계법인

외환/하나은행 근무

現 삼지회계법인 이사, 現 한국심장재단 감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내부감사사

IFRS Manag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