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칼럼] 타인의 행복과 나의 안녕
[김정훈 칼럼] 타인의 행복과 나의 안녕
  • 김정훈
  • 승인 2023.07.0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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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약 한달전 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이 숙제를 도와달라고 제 방으로 왔습니다.

'좋아. 그까짓 것 아빠가 도와주지!' 하며 큰소리 쳤습니다.

사실 뭔가 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습니다. 단지 용돈 주는 거 빼고 다른 일이나 상황에서 말이지요. 물론 아들 놈은 용돈 받는 게 가장 큰 도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들이 도와달라고 한 숙제는 국어숙제였는데 질문은 이렇습니다. 두가지 문장에 대해 글을 적는 질문이였는데요.

첫번째는 '아빠가 생각하는 사람 중 가장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적어보세요.'였고, 두번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적어보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음... 타인의 행복이라 물론 나 자신이 제일 행복해야겠지만 타인이라면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겠지?'

아들의 질문을 듣고 보니 전에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불교 초기경전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가와 관련한 파세나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부처님 시대에 잘나가던 파세나디란 왕이 왕비와 함께 왕궁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순종하는 왕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파세나디 왕은 깊은 만족과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감상에 젖어 파세나디 왕은 왕비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왕비여, 그대에게 그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인가?"

왕이 내심 왕비로부터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원했지만, 왕비의 대답은 왕의 예상을 처참히 무너뜨렸습니다.

왕비는 "대왕이시여, 정말 죄송한 마음이오나 제게 제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왕의 표정이 분노에 가득해 질 찰나 왕비는 다음과 같이 왕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누군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잠시 분노에 찼던 왕은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왕비여, 나 역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는 것 같네."

왕의 분노는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졌지만 왕비에 대한 괘씸한 생각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부처님을 찾아뵙고 왕비와 나눴던 대화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털어 놓습니다.

부처님은 아래의 게송(불교계에서 가르침을 외우기 쉽게 일종의 시구 형태로 만든 것)을 알려주십니다.

"동서남북 온 사방에 마음을 다 기울여 찾아봐도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러한 줄 알고 해치면 안된다."

이 게송을 듣고 파세나디 왕이 괴로움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여튼 저는 아들에게 "난 네 엄마의 행복을 바란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일종의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무언의 정답이겠죠.

아들이 큰소리로 아빠가 가장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이 엄마래 하고 소리칩니다.

부엌에서 와이프는 의외라는 듯한 느낌과 기분이 살짝 좋아서 들뜨는 목소리로 "정말? 웬일이래~" 하는 반응이 들립니다.

사실 여기서 멈추었으면 모두가 만족하는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아들이 두번째 질문을 물어봅니다.

"그럼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야?"

"음.... 그거는 설령 적이라 할지라도 그가 행복해야 내가 편안해지고 행복질 텐데 하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고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아들이 눈치없게 엄마한테 뛰어가서 소리칩니다.

"엄마! 아빠가 엄마는 적이래!"

순간 와이프의 반응에 몸서리쳐집니다.

"그럼 그렇치. 적이지 암 적이겠지. 역시나..."

"아니 그게...."

해야할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을 잃었고, 아들에게 부연 설명을 하려는 시도도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역시 이번에도 와이프에게 적이 되어 버렸네요.

사실 제가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던 것은 평상시에 제가 책에서 봤던 내용이 가슴속에 많이 남아 있어서였습니다. 제가 적에 대해서 그러한 관대한 경지에 올라서는 절대 아니구요.

불교경전에 보면 적과 관련한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산적에 습격받아 죽게 된 수행승이 적의 원망은 고사하고 죽는 것도 두렵지 않으나 해탈의 경지에 들지 못함을 아쉬어 하는 얘기부터,

적이 온몸을 난자할지라도 원망하는 것 자체가 마음을 괴롭게하는 것이니 그러한 악연이 일어났음을 인정하고 마음을 괴롭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등 세속을 초월했던 경지들이 그 예입니다.

이번 기회에 적과 관련한 여러 금언들을 찾아봤습니다.

'항상 당신의 적을 용서하라. 그것만큼 적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오스카 와일드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감정이 상했다고 서로 애정의 유대관계를 끊어서도 안된다. 분명 선량한 본성이 다시 기억의 신비로운 현을 튕길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나는 자신의 욕구를 극복하는 사람이 자신의 적을 이기는 사람보다 용감하다고 믿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평화를 가져오고 싶거든 친구에게 말하지 말고 적에게 말하라.'

- 모세 다얀

'사악으로 유혹하는 것은 원수나 적이 아니라 바로 네 마음이다.'

- 붓다

'적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그들을 위로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분노와 원한은 우리 스스로에게 해를 끼친다.'

- 붓다

좋아하지 않는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직장생활도 그렇고 적대시 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참 사람관계가 어렵습니다.

저도 이 시대의 대부분의 분들과 같이 속이 좁아 좋아히지 않거나 적대시하는 인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솔직히 그분들의 행복은 커녕 속으로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처한 상황이 우호적이고 안정적이면 저에게 위해 혹은 불편함이 전파되지 않을 거라는 것, 혹은 그것이 적게 올 것이라는 것 그것을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조그만 위안이라고 할까요.

모두들 경험하시지 않습니까? 본인의 마음과 몸이 편하고 불편한데가 없으면 그리고 우호적인 상황에 있으면 남들에게도 곧잘 친절해진다는 사실을 요. 물론 개인적 성향에 따라 화를 보다 잘 내거나 짜증을 자주 부리거나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결국 처해 있는 상황과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주위의 존재들에게 친절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의 몸과 마음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나 경제적 상황, 가족 관계, 친구 관계 등이 양호해야 한다는 사실이겠죠.

하지만 매번 후회하고는 합니다. 방금 전 그 전화를 그렇게 받는게 아니었는데. 아 왜 거기서 짜증을 냈을까. 왜 별일 아닌 일로 민감하게 굴었을까. 서로가 기분좋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인심을 베풀 걸...하며 말이지요.

우리가 먼저 편해지면 다른 이들 특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적이라고 여기질 사람에게까지도 친절해질 수 있을거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다른 이들도 편해지면 그 역시 우리에게 아량을 베풀겁니다. 심지어 그가 우리의 적 일지라도요.

먼저 우리가 처해진 상황이 편해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요. 불가능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경제적 상황이나 가족관계나... 하지만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 중 편해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을 테니까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든지요.

우리가 많이 행복해져서 주위의 모든 존재들에 친절함을 베풀어 줄 수 있는 희망을 갖고자합니다. 심지어 적이라 불리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요.

김정훈 약력

現 삼지회계법인 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내부감사사

IFRS Man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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