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칼럼] 파놉티콘
[김진혁 칼럼] 파놉티콘
  • 김진혁
  • 승인 2024.01.0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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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이름의 원통 모양 교도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스어 모두(pan)와 보다(opticon)를 합친 단어다. 공황의 관제탑처럼 교도관이 자리하는 중심부에서는 죄수 각방을 볼 수 있지만, 감방 안에서는 교도관들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시선의 비대칭성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의 개념을 사회 전체로 확장했다. 권력이 다수를 감시하는 사회에서는 개개인은 언제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감시자가 되는 자발적 감시사회가 된다.

이 파놉티콘을 통해 피지배 계급이 지배계급의 규율을 내면화하게 됐다고 말한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받았다.

선한 공공의 이익에 거스르는 정책에 반대하기가 어렵지만, 자유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안전을 사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둘 다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건강을, 안보를, 공익을 위해 추진하는 사안이라 해도 시민의 자유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살았던 이야기다. 새집과 조경도 마음에 들었지만 딱 한 가지 고민은 누군가 엘리베이터에 야간 방뇨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소변 금지’라는 팻말도 붙이고 ’경찰 고발’이라는 감성팔이와 나중에는 엘리베이터 벽에 ‘가위’ 그림까지 그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고민 끝에 ‘CCTV 촬영 중’이라고 써 붙였더니 고약한 냄새가 사라졌다. 실제로 CCTV를 설치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오늘날의 마케팅은 니즈에서 원츠로 바뀌었다. 니즈는 부족이나 결핍의 충족으로 제품만 만들면 판매에는 지장이 없었다. 원츠는 일종의 욕구로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없어도 되는 것을 파는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판다. 보험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의 평화와 가족의 미래를 판다. 항공권을 팔지 마세요. 제시간에 도착하는 약속을 파는 것이다. 물건을 팔지 말고 꿈과 자부심을 팔아주세요. 맥도날드의 콘셉트는 “잊지 마세요. 우리는 햄버거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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