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칼럼] 신민에서 시민으로의 개혁, ‘연호개혁’
[김승현 칼럼] 신민에서 시민으로의 개혁, ‘연호개혁’
  • 김승현
  • 승인 2024.02.16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이낸셜리뷰] 1912년 2월 12일. 동아시아 역사에서 크나큰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가 건국 296년을 며칠 앞두고 295년 11개월 26일 만에 멸망한 것이다.

그레고리력 1912년 2월 12일은 선통 3년 12월 25일이기도 했다. 중국의 황제가 제정한 연호가 세상에 쓰인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본래 연호를 제정하는 권한은 황제에게만 있고, 이는 황제의 권위가 물리적인 공간과 백성 등을 넘어서 시간마저 지배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중국 황제의 연호를 써왔다. 여기서 나아가 시간을 지배하는 황제만이 책력(달력)을 제정하고 반포할 수 있었으며 과거 조선 또한 매년 새해가 되면 중국에 사신을 보내 책력을 받아왔다.

이처럼 황제가 제정한 연호란 단순히 햇수를 세는 방식이 아니라, 조공 책봉 관계하에서 과거 중화의 영향에 있었던 동아시아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이러했던 연호가 1912년 2월 12일 기해 사라지게 됐다.(물론, 옆 일본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위에 설명하였던 동아시아의 질서와는 무관하다)

이후 중화민국은 민국 기년을 사용하게 됐고, 우리나라는 단기를 거쳐 현재는 서력을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한 나라가 멸망하고 그 국체가 바뀌어 이전까지 사용했던 시스템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이는 이전까지 황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동아시아의 세계관이 바뀌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동아시아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현재 우리나라 또한 미국의 대통령이나 중국의 주석, 또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취임한 날을 기준으로 연호를 제정하지 않는다.

기실 황제의 취임을 기준으로 한 기년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세상의 중심이 황제라는 것이고, 다른 세상 만물은 그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뀌었다는 것은 곧 더 이상 어떠한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신민에서 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사 속에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2월은 설을 비롯해 발렌타인 등 여러 날이 있지만, 우리의 시간이 바뀐 2월 12일 ‘신민에서 시민으로의 연호 개혁의 날’을 기억해보자.

김승현 약력

건국대 대학원 겸임교수

前 청와대 행정관

前 서울특별시 정무보좌관

제21대 국회 보좌관

연세대학교 신학과, 정치외교학과 학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