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리뷰] 소수사원이 있는 영주시 순흥면은 조선 시대에는 순흥도호부로서 역사적으로 큰 고을이었다. 그런데 조선 세조 때 순흥에 유배를 온 금성대군(세종 임금의 6째 아들)의 단종복위 운동이 하다가 실패하여 금성대군은 사사 당하고, 이 고을은 현으로 강등되었고, 역적의 고장으로 폐허로 변했다. 순흥도호부에 있던 700명에 달하는 순흥 안씨가 멸문지화를 당하여 전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세조의 철저한 보복은 처참했다. 관련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살육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이때 피살된 사람들의 피가 죽계천을 온통 피로 물들게 하여 십여 리까지 흘러갔었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에 취임 이후 풍기지방의 교화를 위해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는 사묘를 설립하고 1543년(중종 38)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했다.

명종 5년 (1550년)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소수서원(紹修書院,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 旣廢之學 紹而修之)’는 사액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의 되었다. 퇴게선생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4천여 명의 유생들이 배출되었다.
백운동서원은 송나라의 예에 따라 사액(賜額)과 약 30결의 토지 및 18명의 노비, 4명의 원직(院直) 등을 받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고려 후기 문신인 회헌 안향선생은(1243~1306)은 여러 차례 원나라를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보급했다. 도참의중찬(都僉議中贊,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시며 동방 신 유교의 비조(鼻祖)이다.

저녁 여러 개 선비촌 중에서 방 배정을 받은 곳은 김문기가 고택이다. 김문기(金文基, 1399년 ~ 1456년)는 단종의 충신 삼중신의 한 명으로 우연치고는 기이하다. 왜냐하면 김문기는 나의 김녕김씨 선조가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