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 내가 번 돈 마음대로, 돈의 오해
[돈의 역사] 내가 번 돈 마음대로, 돈의 오해
  • 김진혁
  • 승인 2024.09.2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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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세상의 축소판

올바른 4가지 태도

돈의 오해에서 벗어나기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 돈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모든 존재는 가치가 있고 돈이 가치를 대변한다.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되며 이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은 효용성이 매우 높은 가치를 갖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다이아몬드에 비해 가치를 낮게 본다. 이처럼 돈에 대한 4가지 태도를 살펴본다.

첫째, 돈을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돈을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타락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돈에 대해 금욕적인 거리감을 두는 태도로서, 최대한 돈을 적게 소유해야만 한다고 믿는 태도이다.

둘째, 무관심한 태도이다. 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도 삶에서 중요한 것들과는 관계가 없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돈은 아주 기초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이다.

셋째, 돈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태도다. 이는 돈이 많은 고통을 낳고 불평등과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돈이 선한 용도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나치게 부유한 자들의 손에서 돈이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넷째, 근본적으로 돈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돈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며, 비록 그것이 불공정하고 불완전하더라도 인간의 속성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이다. 돈과 영혼 사이에서 올바르고 균형 있는 선택이 요구된다.

내가 금에 의해 소유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돈의 오해를 살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오해 1. 내가 번 돈이니 내 마음대로

​자본주의의 근간은 사유 재산권이다. 열심히 일해서 거둔 소득이기에 처분권도 자신에게만 있다는 주장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 소유자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재산권을 절대화하고 공공의 이익을 뒷전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과연 돈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단지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을 덧붙여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돈을 번 것이다. 우리는 맡겨진 재산에 대해 관리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돈이라는 착각으로 사치와 방탕 그리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자녀를 특권과 편법 그리고 금권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은 죄악이다. 부잣집 자녀일수록 사회에 덕을 많이 받았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시켜야 한다.

어리석은 부모일수록 아이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공부만 잘하면 돼. 고액과외, 유학 걱정이랑 하지 마라. 부모 돈은 다 내 것이야.”

오해 2 :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보통사람은 하루 60~70% 이상 돈 생각을 한다고 한다. 사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적다. 돈으로 자식을 키웠다면 자식은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 돈으로 세상을 이기고 사랑을 이룬 것 같았지만 그런 성공과 사랑은 쉽게 떠난다. 돈이 있다고 해서 죽음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올바른 경제 관념과 돈으로부터의 자유만이 진리에 이르게 한다.

오해 3 :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탐욕은 만족을 모를 때 솟아나는 자기기만이다. 돈으로 행복을 쫓아가는 것은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족쇄와도 같다. 그러므로 ‘소유=행복’이라는 등식이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부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되었고 부자는 가진 것 때문에 더 불안할 수 있다.

수입과 생활의 질 측면에서 볼 때 봉급 인상 액수보다는 그 비율이 더 큰 효과를 나타낸다. 봉급이 1만 달러이던 사람이 2만 달러로 100% 오른 것이 10만 달러에서 11만 달러로 오른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 돈 많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부터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 4: 다른 사람 눈에 걸리지 않으면 죄가 아니다.

절도죄로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부모를 꼭 한번 면회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면회 온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 “착한 아이가 왜 남의 물건을 훔쳤느냐?”의 통곡이 나왔다. 이때 아들은“어릴 적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를 긁었음에도 그대로 도망간 이유를 물었더니‘남의 눈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했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마트에서 물건 산값을 계산했을 때 점원이 실수하여 넘어간 경우가 있었다. “어머니 저것이 계산되지 않았는데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내 잘못이 아니잖니” 빨리 내 손을 잡고 모른 채 마트에서 서둘러 나왔다. 이때에도 남의 눈에 안 띄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이번에 남의 물건을 훔칠 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눈물을 흠쳤다.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 부모들이 책임지고 꼭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다.

좋은 음식 못 먹이고, 좋은 옷 못 입혀도, 일류 대학에 못 보내도 자녀 경제교육만은 꼭 가르쳐야 한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자녀 경제공부를 시켜라. 눈물로 심은 씨앗이 내일의 축복이 될 것이다.

오해5: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은 1986년 새벽,‘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중학교 3학년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전교 1등을 하던 이 학생의 유서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은주(이미연)의 호소로 두렵게 한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기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정말 남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한국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 됐지만, 행복지수는 경제적 성과에 훨씬 못 미친다. 사교육 과잉은 개인적으로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면서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들의 목적은 1등이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오해6: 인사 제대로 못 해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아이는 인성이 좋은 아이가 아닌 공부 잘 하는 아이라고 한다. 예의가 바르지 못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일류대 입학만이 목표인 머리 좋은 아이들은 괴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오해7: 부모의 지나친 간섭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의 장래에 마이너스효과, 자기 결정력을 상실하고 지시만을 기다리는 약한 아이로 만든다. 아이가 혼자서 할 때보다 자신이 도와줄 때 더 빠르다는 생각,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 말해버리는 것은 자식 사랑이 아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아이를 돕는 것이 사랑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아이가 스스로가 의사결정하고 문제 해결해 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이의 과잉보호는 독이 된다. 특히 돈 관리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은 도박꾼과 일하는 도박장의 딜러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커다란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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