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휠체어도 갈 수 있는 태평양 절경, '룽판공원' 무장애 탐방로
- 82헥타르의 야외 박물관, 셔틀버스로 떠나는 '원주민 문화단지'
- 적산가옥의 힙한 변신 '승리성촌'과 핑동의 소울푸드 '사차장'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핑동 여행의 1, 2편이 바다의 신비와 해양 미식을 다루었다면, 마지막 여정은 대지의 굳건함과 그 위에서 피어난 인간의 역사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거친 바람이 빚어낸 자연, 16개 부족의 삶이 응축된 야외 박물관, 그리고 근현대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예술 공간까지. 핑동의 육지는 바다만큼이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여행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한 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땅끝에서 만난 '동아시아의 빛', 어롼비 등대
룽판공원의 무장애 탐방로와 모래 폭포 '풍취사'
3일 차 아침, 여정의 시작은 대만 최남단,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곳이었다. 초록빛 잔디 위에 우뚝 솟은 순백의 요새, '어롼비 등대(Eluanbi Lighthouse)'다.



대만 해협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 등대는 1927년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대만 8경' 중 하나로 꼽혀왔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낭만적인 외관 뒤에 숨겨진 독특한 구조다. 등대 주변은 군사 기지처럼 견고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총을 쏘기 위한 '총안'과 '참호'가 파여 있다.
1883년 건립 당시, 원주민들의 습격으로부터 등대를 지키기 위해 요새화할 수밖에 없었던 치열한 생존의 흔적이다. 덕분에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한 무장 등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140년이 지난 지금도 대만에서 가장 밝은 빛(180만 캔들파워)을 뿜어내며 뱃사람들에게 '동아시아의 빛'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핑동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롼비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 거대한 초원, '룽판공원(龍磐公園)'을 마주하게 된다. 융기한 석회암 대지가 만들어낸 기암괴석과 코발트빛 태평양이 어우러진 웅장한 절경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특히 반가운 소식은 2021년 3월 조성된 무장애 탐방로(Accessible Trail)다. 룽판 공원에는 노약자, 휠체어 이용자, 유모차를 동반한 가족 등 누구나 차별 없이 이 절경을 즐길 수 있도록 약 162m 길이의 목재 데크를 설치했다. 울퉁불퉁한 흙길 대신 평탄하게 이어진 데크는 주차장에서 해안 전망대까지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휠체어 위에서도 태평양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길, 자연 앞에 누구나 평등할 수 있도록 배려한 핑동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룽판공원을 지나 더 북쪽으로 향하면, 자연이 부리는 기이한 마술을 볼 수 있는 '풍취사(風吹沙)'에 닿는다. '바람(風)이 모래(沙)를 불어(吹) 올린다'는 이름 그대로, 이곳은 바람과 모래의 전쟁터다.
여름철 우기에는 빗물이 모래를 씻어 절벽 아래 해변으로 내려보내지만, 겨울이 되면 강력한 '동북 계절풍'이 그 모래를 다시 절벽 위 도로까지 거세게 불어 올린다고 한다. 가이드는 "오늘처럼 바람이 7~8급으로 불고 있으면, 모래가 절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래 역류'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라고 설명했지만, 오래 머물수가 없어 모래 역류 현상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가이드는 절벽을 타고 치솟는 황금빛 모래 폭포는 핑동의 거친 자연이 가진 생명력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셔틀버스로 떠나는 시간 여행... '대만 원주민 문화단지'
버스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핑동현 마지아향(瑪家鄉)의 '대만 원주민 문화단지'는 그 규모부터 압도적이었다. 1985년에 설립된 이곳은 무려 82헥타르(약 25만 평)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에 대만 정부가 공인한 16개 부족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워낙 넓은 탓에 도보로는 하루 만에 둘러보기 힘들어 단지 내를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관람객을 맞이하는 '영빈구'를 출발해 산악 지형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타마루완'과 '푸구완' 구역에는 각 부족의 전통 가옥들이 숲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루카이족의 웅장한 석판집부터 대나무와 나무로 지은 소박한 가옥까지, 원형 그대로 재현된 건축물들은 실제 원주민 마을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정의 끝인 '나루완' 구역에 다다르면 원주민 문화의 역동성을 만날 수 있다. 360도 원형 극장과 가무 공연장에서는 시간대별로 화려한 전통 공연이 펼쳐지며, '우리의 교실'에서는 여행자들이 직접 공예 체험을 하며 그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다.





이날 투어의 깊이를 더해준 것은 루카이족 출신 루무루마 해설사의 설명이었다. 그는 파이완족의 전통 가옥인 석반옥(石板屋)앞에서 과거 '머리 사냥' 풍습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었다.
"흔히 야만적인 행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족을 지키는 용맹함을 증명하는 신성한 의식이었습니다. 적의 머리를 베어올 만큼 강인한 전사여야만 비로소 결혼할 자격, 즉 처자식을 지킬 능력이 있음을 인정받았지요. 그러니 머리 사냥꾼은 사실 가족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던 셈입니다.“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파이완족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유리 공예'체험이었다. 파이완족에게 유리 구슬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며 결혼 예물로 쓰이는 귀한 물건이다. 참가자들은 1,000도가 넘는 불꽃 앞에서 장인의 지도를 받으며 직접 구슬을 만들었다. '사랑과 구애'를 뜻하는 공작새 깃털 문양, '용기'를 뜻하는 문양 등 작은 구슬 하나에도 그들의 역사와 낭만이 담겨 있음을 손끝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71채의 낡은 집, '별들의 고향'이 되다... 승리성촌(勝利星村)
여행의 마지막 날, 핑동 시내 한복판에서 시간 여행의 문이 열렸다. 바로 '승리성촌 창의생활원구(Victory Star Village Creative Life Park)'다. 대만 전역에 남아 있는 군인 마을(권촌, 眷村) 중 가장 큰 규모와 완벽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무려 71채의 역사 건축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37년, 이곳은 핑동 비행장에 주둔하던 일본 육군 비행장교들의 고급 관사로 지어졌다. 해방 후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퇴해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장군들이 이곳에 짐을 풀며 역사의 주인은 바뀌었다. 마을 이름에 '승리'와 '성(Star)'이 합쳐진 이유는 이곳에 쑨리런(孫立人) 장군을 포함해 무려 31명의 장군(Star)이 거주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별들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별들의 고향'이 비단 군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대만의 독특한 권촌 문화는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을 배출한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세계적인 영화거장 이안(Ang Lee)감독이 핑동의 권촌에서 성장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고, 1970~80년대를 풍미한 대배우 임청하, 허샤오센 감독, 배우 왕조현, 가수 등려군 역시 이곳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대만 현대 문화의 '별'들을 잉태한 요람이었던 것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을 걷다 보면 건물의 '급'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마당을 가진 독채는 장군급,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사는 형태는 영관급 장교의 집이었다.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덥고 습한 핑동의 기후를 이겨내려는 지혜가 스며있다. 지면의 습기를 피하고자 바닥을 띄워서 지었고, 벽 아래에는 통풍구를 뚫어 바람길을 냈다. 뜨거운 태양을 가리기 위해 길게 뺀 처마와 마당에 심어진 거대한 망고나무, 잭프루트 나무들은 이곳이 남국임을 실감케 한다. 가장 인상적인 디테일은 마당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둥근 물탱크다.
"저게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바로 폐기된 전투기의 보조 연료탱크입니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주민들이 저걸 개조해 물탱크로 썼던 거죠." 해설사의 설명에 여행자들은 전쟁의 잔해가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든 아이러니한 풍경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승리성촌은 담장을 허물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낡은 적산가옥은 독립 서점, 분위기 있는 카페, 원주민 공예품점, 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서 커피를 마시거나, 다다미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경험은 핑동 여행의 백미다. 해질 녘, 붉은색 대문과 고목들이 어우러진 골목길은 '레트로 감성'을 찾는 젊은이들과 역사를 추억하는 노년층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의 용광로가 된다.
건축물에는 덥고 습한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바닥을 띄우고 처마를 길게 뺀 지혜가 엿보인다. 마당 한구석에 놓인 둥근 물탱크는 폐기된 전투기의 보조 연료탱크를 개조한 것으로, 전쟁의 잔해가 생활 속으로 파고든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현재 71채의 적산가옥은 허물어지는 대신 독립 서점, 카페, 갤러리로 재탄생해 핑동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미식여행 1] 영혼을 채우는 소스의 마법 '사차 샤브샤브'
금강산도 식후경, 핑동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미식이다. 여행 중 저녁 식사로 만난 '사차(沙茶) 샤브샤브'는 대만 현지인들의 소울 푸드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한국의 샤브샤브와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사차장(沙茶醬)'에 있다. 말린 새우, 건어물, 땅콩, 참깨, 마늘, 고추 등을 기름에 볶아 만든 이 소스는 깊고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가이드의 팁에 따라 사차장 그릇에 날달걀 노른자를 톡 터뜨려 섞자, 고소함이 배가 되며 황금빛 특제 소스가 완성됐다. 여기에 다진 파와 마늘, 그리고 핑동의 특산물인 양파를 듬뿍 넣어 나만의 소스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즐거움이다.
해산물과 채소로 우려낸 시원한 육수에 얇게 썬 고기를 살짝 익혀, 직접 만든 소스에 푹 찍어 먹는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사차장의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고기의 육즙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감칠맛의 폭죽을 터뜨린다.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위로의 맛'이었다.
[미식여행 2] 전통과 현대의 맛있는 만남... 승리성촌 '프리마 비스트로’
핑동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승리성촌 내에 위치한 '프리마 비스트로(Pulima Bistro)'에서 이루어졌다. 파이완족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이곳은 대만 원주민의 전통 식재료를 현대적인 이탈리안 요리로 재해석한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메뉴는 '원주민식 피자'였다. 일반적인 밀가루 도우 대신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먹던 곡물인 '조(기장)'를 섞어 반죽해, 씹을수록 구수하고 쫄깃한 식감이 남달랐다.
이어 나온 '산후추 파스타'는 미식 경험의 정점이었다. 셰프는 일반 베이컨 대신 훈연한 산돼지 고기를 사용하고, 여기에 대만의 야생 향신료인 '마카오(Magaq, 산후추)'를 더했다. 레몬그라스와 생강을 섞은 듯한 마카오 특유의 알싸하고 상쾌한 향이 크림소스의 느끼함을 완벽하게 잡아주며 미각을 깨웠다. "음식이야말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셰프의 철학이 접시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는 만큼 맛보고, 느낀 만큼 보인다
3회에 걸친 핑동 여행기는 청정한 바다의 맛에서 시작해 역사의 향기가 밴 퓨전 요리로 마무리되었다. 대만 핑동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자연의 경이로움과 굴곡진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다채로운 식문화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핑동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고, 현지의 맛을 음미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아시아의 숨은 보석이다. 이제 뻔한 대만 여행이 지루하다면, 미식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새로운 좌표, 핑동으로 떠나볼 차례다.


